루아흐(프뉴마), 게헨나 / 죽음



성경은 죽음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생기 : 루아흐 / 프뉴마

「성경은 죽음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창세기 3장에서 한때는 하나님 나라의 가장 높은 천사였지만 하나님을 배신하고 자신을 스스로 높이게 된 사탄이 자신의 사상을 이 지구의 사람에게 전하여 유혹할 매개체로 당시 에덴동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물이었던 뱀을 선택하면서부터 시작된 "뱀 숭배사상"이 역사를 거쳐 현재까지 어떤 모양으로 전 세계의 종교에 나타나 있는지를 실제 현존하는 종교들과 그 종교를 상징하는 사진을 보면서 알아보았다.

특히, 창조주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성경책이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으로 믿고 연구하는 종교를 제외하고, 서양과 동양의 모든 이교들의 뿌리는 바로 "우로보로스(자기의 꼬리를 먹는 뱀. 나의 끝은 곧 시작이다)"라는 뱀의 형상을 한 자칭 창조의 신이라는 사실을 실제 사진들을 보면서 알게 되었으며, 이것은 창세기 3장 15절의 원시복음에 기록된 말씀의 실질적인 성취라는 사실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12장에서는 창세기 3장 15절에 기록된 "뱀과 뱀의 후손", 그리고 "여자와 여자의 후손(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여자의 남은 자손"의 전쟁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창세기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요한계시록 12:9, 17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그리고, 창세기 3장 4절에 사탄(뱀)이 하와(이브)에게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주장한 것이 바로 "영혼 불멸설"의 시작이며, 이러한 사탄의 주장으로 시작된 "영혼불멸설"은 현재까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하였다. 

사탄으로부터 시작된 이 "영혼 불멸설"은 성경이 기록하시고 말씀하시는 사람의 죽음과 그 이후에 대한 진실을 모조리 무시하고 있으며, 온 세계 사람들에게 "사람의 몸은 죽지만 사람의 영혼은 죽지 않고 영의 형태로 지옥에 가거나 천국에 간다"는 허황된 가짜 진리를 퍼뜨리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도 함께 확인하였다.

지난 연구에서 명확하게 확인한 바, 고대의 이교들의 기초 신앙은 바로 그들이 만들어낸 뱀신 "우로보로스"를 중심으로 영혼불멸사상을 그들의 믿음과 교리의 중심에 가지고 있으며, 그 사상은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바벨론 왕국을 거쳐서 앗수르와 페르시아, 그리고 그리스와 로마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만들어낸 각종 신화들 속에 숨겨져 그 신화들의 기초사상으로 자리잡았고, 나중에는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독교 친화정책에 따라서 로마교회가 탄생함으로써 그 정점을 찍었으며, 그 이후에 종교암흑시대를 거치며 그 사상을 넓혔다. 그리고, 마침내 다시 올바른 성경의 가르침으로 돌아가려는 "종교개혁운동"을 통하여 거짓된 로마교회의 탄압에 맞서는 "개신교회(Protestant Church)"가 탄생하게 되었으나, 그런 개신교회들도 역시 로마교회를 통해 전파된 사탄의 "영혼불멸사상"을 자신들의 교리에서 모두 몰아내지는 못했으며, 지금까지도 그들의 구원론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영혼불멸사상"은 고대 강대국들을 거치면서 그들의 학문과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그 결과로 "철학"이라는 하나의 학문으로 재탄생하게 되었으며,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철학사상을 전 세계에 전파하게 된 하나의 기폭제 역할을 한 인물로써, 죽음은 단지 몸에 구속되어 있던 영혼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스스로 독배를 마시고 죽었으며, 지금은 세계 4대 성인 중에 한 사람으로써 추앙받고 있다는 사실도 함께 알아보았다.

또한, 마지막으로 "영혼불멸사상"이 현재의 전 세계의 대중문화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어린아이들이 즐겨보는 만화영화, 그리고 남녀노소 누구나 할 것 없이 좋아하는 영화와 음악, 그리고 TV드라마의 중심 주제로 자리잡았다는 사실도 여러 예시들과 함께 알아보았다.




성경은 죽음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지옥 : 게엔나)

"게엔나"가 의미하는 것 : 구약시대의 이스라엘의 악한 왕들의 우상숭배와 이교제사예식의 장소

①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악한 왕 아하스는 선지자 이사야 시대의 왕이었다.
그는 우상숭배를 자행하며 당시의 "힌놈의 골짜기"에 있는 도벳(Tophet)이라 불린 산당(역대하 28장 3절)에서 몰렉에게 어린아이를 태워 제사드리는 야만적인 이교 종교의식을 치렀다. 

*이러한 반역적인 의식들에 대한 좀 더 상세한 묘사에 대하여는 레18:21; 신 18:10;32:17; 왕하 16:3; 23:10; 렘 7:31을 참조하면 된다.

[역대하 28장 1~4절]

아하스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육 년 동안 다스렸으나 그의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바알들의 우상을 부어 만들고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분향하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그의 자녀들을 불사르고

또 산당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니라

[열왕기하 16장 2~4절]

아하스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육 년간 다스렸으나 그의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여러 왕의 길로 행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라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또 산당들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이사야 30장 33절]

대저 도벳은 이미 세워졌고 또 왕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라 깊고 넓게 하였고 거기에 불과 많은 나무가 있은즉 여호와의 호흡이 유황 개천 같아서 이를 사르시리라

그리고, 이 악한 왕 아하스를 이어 그의 손자 므낫세가 이 의식을 회복시켰고(역대하 33장 1절,6절; 예레미야 32장 35절). 수년 후에 선한 왕 요시야가 이런 잔인하고 섬뜩한 형식의 예배가 행해졌던 "힌놈의 골짜기"에 있는 이교의 산당들을 공식적으로 무너뜨림(더럽힘: 열왕기하 23장 10절)으로써, 그 악한 이교종교의식을 정지시켰다.

[예레미야 32장 35절]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 바알의 산당을 건축하였으며 자기들의 아들들과 딸들을 몰렉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느니라 그들이 이런 가증한 일을 행하여 유다로 범죄하게 한 것은 내가 명령한 것도 아니요 내 마음에 둔 것도 아니니라

[열왕기하 22장 1~2절; 23장 8,10절]

요시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팔 세라 예루살렘에서 삼십일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디다요 보스갓 아다야의 딸이더라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

또 유다 각 성읍에서 모든 제사장을 불러오고 또 제사장이 분향하던 산당을 게바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더럽게 하고 또 성문의 산당들을 헐어 버렸으니 이 산당들은 그 성읍의 지도자 여호수아의 대문 어귀 곧 성문 왼쪽에 있었더라

왕이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의 도벳을 더럽게 하여 어떤 사람도 몰록에게 드리기 위하여 자기의 자녀를 불로 지나가지 못하게 하고

또한, 이러한 우상숭배와 또다른 악행에 대한 징벌과 심판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힌놈의 골짜기"가 나중에는 "이 백성들의 시체들"로 인해 “살육의 골짜기”, "죽임의 골짜기"가 될 것이라고 예고하셨다.

[예레미야 7장 32~33절]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날이 이르면 이 곳을 도벳이라 하거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 말하지 아니하고 죽임의 골짜기라 말하리니 이는 도벳에 자리가 없을 만큼 매장했기 때문이니라

이 백성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밥이 될 것이나 그것을 쫓을 자가 없을 것이라

[예레미야 19장 6절]

그러므로 보라 다시는 이 곳을 도벳이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죽임의 골짜기라 부르는 날이 이를 것이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사야 30장 33절]

대저 도벳은 이미 세워졌고 또 왕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라 깊고 넓게 하였고 거기에 불과 많은 나무가 있은즉 여호와의 호흡이 유황 개천 같아서 이를 사르시리라

따라서, 힌놈의 골짜기는 구약시대부터 유대인들에게는 마지막 큰 심판의 날에 있을 소멸하는 불과 악인의 징벌에 대한 상징이 되었던 것이며, 나중에 신약시대에 이르러서는 하나님의 심판과 죽음을 의미하는 하나의 관용어구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사야 66장 24절]

그들이 나가서 내게 패역한 자들의 시체들을 볼 것이라 그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여 모든 혈육에게 가증함이 되리라

[마태복음 5장 22절]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지옥 불 - "(γέεννα πῦρ: 게엔나 퓌르)" 죽음의 상징이 된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서 이교제사에 드려졌던 사람과 동물의 시체들을 불사르던 그 불을 의미함. 바로 위의 이사야 66장 24절의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며"와 같은 불을 의미하며,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함.

⑤ “게헨나. 즉, 힌놈의 골짜기”는 부분적으로 헬라 철학에서 유래한 유대인의 종말론적 사상에서 불경건한 자들의 영혼이 마지막 심판과 보상의 날까지 하나님의 형벌 아래 머물러 있는 장소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 "게헨나; 힌놈의 골짜기"를 "쓰레기 소각 장소"로 만들어 마지막 날의 불의 전형이 되게 한 유대인들의 전승은 12세기와 13세기 유대인 학자 랍비 킴히(Kimchi)에게서 비롯되었는데, 이러한 사상은 고대 유대 문헌에는 결코 나타나지 않고, 유대의 초기 랍비들은 마지막 날의 심판의 불의 전형으로서 게헨나 사상의 근거를 이사야 31장 9절에 두고 있다.(*참조문헌: Strack and Billerbeck, Kommentar zum Neuen Testament, vol. 4, 1029, 1030)

[이사야 31절 9절]

그의 반석은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물러가겠고 그의 고관들은 기치로 말미암아 놀라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여호와의 불은 시온에 있고 여호와의 풀무는 예루살렘에 있느니라












성경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성경구절

성경책은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베스트셀러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도 성경책 속에서 지혜를 구하고, 그들의 인생의 걸어나갈 향방을 밝히 깨닫기를 원한다.

성경말씀들 중에서 이 지구의 역사 속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성경구절 「TOP 5」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NO. 5.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NO. 4. [빌립보서 4장 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NO. 3. [로마서 8장 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NO. 2. [예레미야 29장 11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NO. 1.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스코틀랜드 교회 목사인 윌리엄 바클레이(William Barclay, 1907년 12월 5일 ~ 1978년 1월 24일)는 요한복음 3장 16절을 "복음의 정수"

어떤 신학자들은 이 성경절이 "성경의 축소판"

1885년 6월 7일 저녁 예배에서 찰스 H. 스퍼전(Charles Haddon Spurgeon, 1834년 6월 19일 ~ 1892년 1월 31일) 목사는 런던 메트로폴리탄 교회에서 요한복음 3장 16절을 주제로 영감적인 설교를 전했는데, 그는 설교에서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고백을 청중들 앞에서 했다.

위대하신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보낸 것은 하나님 자신을 보낸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본질상 영원한 하나님과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을 주셨다는 것은 그분 자신을 주셨다는 말입니다.
무엇을 더 주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자기의 모든 것, 자기 자신을 주셨습니다.
그 누가 이 사랑을 측량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해석의 원칙 23가지"의 저자인 신학자 J. 에드윈 하틸(J. Edwin Hartill, 1994~1981)목사는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각 단어가 주는 의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영감적인 해설을 전했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1. “하나님”은 "가장 큰 사랑"
2. “세상”은 인간이 알고 있는 가장 큰 집단
3. “이처럼 사랑하사”는 사람이 가늠할 수 있는 가장 큰 차원
4. “독생자를”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
5. “주셨으니”는 온 우주에서 가장 큰 행동이며 실천
6. “이는 그(저)를”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내보일 수 있는 가장 큰 매력
7. “믿는”은 가장 크고 힘있는 단순성
8. “자마다”는 각 사람에게 주어진 가장 큰 기회
9. “멸망치 않고”는 온 우주에서 가장 큰 약속
10. “영생을”은 감히 사람이 생각할 수도 없는 가장 큰 자산
11.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사람의 사전에는 절대 없는 가장 큰 확신이다.

고린도전서 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하며, 봉사하고, 자신의 최선을 다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이 임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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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장 4절 첫번째 부분

세상에는 많은 부류의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그 중에서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측면에 있어서 네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1. 남에게로부터 전해받은 말씀을 자신이 스스로 성경을 펼쳐서 확인하고 믿는 사람
2. 남에게로부터 전해받은 말씀을 자신 스스로가 성경과 비교하여 확인하지 않고 그냥 믿는 사람
3. 성경의 기준에 따라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말씀을 연구하여 전하는 사람
4. 성경의 진리에 자신의 생각이나 세상이 요구하는 어떤 메시지를 추가해서 전하는 사람

과연, 여러분은 어떤 사람인가?

스스로의 연구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부터 설교나 성경공부 등을 통하여 하나님의 성경말씀을 들었다면, 
여러분은 분명 여러분 자신 스스로 들었던 말씀에 대하여 성경책을 통하여 비교하고,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성경은 이 이유에 대하여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하시는데, 아래와 같다.

첫째,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지금 이 마지막 때에는 더더욱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기 때문이다(마 24:11).
사탄은 진리와 거짓을 교묘하게 섞어서 사람의 이기심을 발동시킨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곧 자신이 가진 신앙과 믿음, 그리고 성경이 제시하는 신앙과 믿음 사이에 일생의 선택을 해야 할 시기가 올 것이다.

둘째,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성경공부가 바로 구약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통해 예수님 자신을 증명하는 방식이었기 때문

누가복음 24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부활을 믿지 않고 있던 제자들(눅24:11)에게 직접 나타나셨다. 그리고 구약성경(모세와 선지자)에 기록된 선지자들의 글 속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증거와 사명에 대한 모든 것을 설명(눅24:25~27,32; 44~45)하셔서 그들의 잠자는 믿음을 다시 일깨워 주셨다. 그리고 그에 대한 결과로써 초대교회의 첫 부흥이 있었던 것이다.

누가복음 24:25~27, 32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누가복음 24:44~45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그리고 성경은 이런 모본을 보인 한 무리들을 기록하고 있다.

사도행전 17:11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우리는 항상 기억해야 한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자신의 믿음에 대해서 설명해야 할 시기가 곧 올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더 깊이 연구하고, 회개의 기도, 성령을 간구하는 기도, 남을 용서하는 기도, 중보기도를 마음을 다하여 하며, 내가 깨달은 말씀을 나의 삶 속에 실천하는 생활(이웃사랑)을 꾸준히 해야 한다.

쉽게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성령과 회개 및 용서와 중보의 기도를 매순간 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실천을 우리의 생활에서 해야 한다는 말이다.


창조의 시작과 끝에 사용된 단어를 통해 본 하나님의 사랑(feat. 어미새)

[창세기 2장 4절]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주요 단어 원어설명

- 이것이 -> 히브리어 원어: 지시대명사 “엘레” / 앞에 나온 내용 전체를 지칭하는 지시어

- 내력 -> 히브리어 원어: 명사 “톨레다” / '창5:1' 및 구약의 38개의 성경절에서 사용된 단어로 “계보”, "역사" 또는 “족보”, 및 “세대”, "가족" 그리고 "계수하다"로 번역됨 / 이 단어의 어근은 히브리어 "얄라다"로써, 그 의미는 "(어미새가) 알을 낳다"임

1. 창세기 2장 4절의 첫번째 부분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후략)"

(1) 이 성경구절은 창세기 1장 1절부터 2절까지 기록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중략)... 하나님의 영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는 문장과 대구(rhyming couplet)가 되어 모든 창조사역을 마무리하는 문장이 된다.

- 창세기 1장부터 2장 3절까지의 모든 창조의 과정을 읽어보면, 창조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문장이나 내용에서는 거의 한 문장도 빠짐없이 그 주어가 "하나님"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그리고, 하나님의 7일 간의 모든 창조사역을 모두 표현하고 난 후의 첫 문장이자 창조사역을 정리하는 결론적인 문장인 창세기 2장 4절에서, 성경은 "앞에서 기술한 모든 내용이 바로 하나님의 창조의 '계보'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 그리고 이 성경구절에는 하나의 숨겨진 비밀이 있다. "내력"이라는 단어에는 히브리어 원어인 "톨레다"가 사용되었는데, 이 단어는 구약 성경에서 주로 "족보, 계보"등의 의미로써 사용되었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이 단어의 기본 어근이 "얄라드"로써 이 단어의 의미는 곧 "알을 낳다, 출산하다, 태어나다, 혈통을 보이다"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 즉,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장 2절에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는 구절을 기록하시면서 "운행하다"; 히브리어로 '라하프'; 즉, "(어미새가)알을 품다"는 의미의 단어를 사용하셔서 창조의 시작이 마치 엄마가 아기를 가 뱃속에 품은 것과 같은 마음인 것을 나타내셨고, 이제 창조사역의 내용을 정리하는 창세기 2장 4절의 첫번째 부분에서는 "내력"이라는 단어; 즉, 히브리어 "얄라다; (어미새가) 알을 낳다"라는 어근을 가진 단어인 "톨레다(족보, 계보)"를 사용하신 것이다.

- 창세기 1장 2절을 연구하고 적은 이전의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운행하시다"에 속하는 히브리어인 "라하프"는 "어미새가 알을 품다"라는 의미를 직접적으로 가지고 있으며, 창세기 2장 4절에 기록된 "내력"이라는 단어의 히브리어 원어의 어근인 "얄라다"는 "어미새가 알을 낳다"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명확하고 확실하며 모든 것이 정확하게 들어맞게 성경말씀을 기록하셨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 이것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창조하신 것이 단순하게 창조의 능력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 아니라, 어머니가 뱃속의 아이를 잘 보살피고 사랑하는 것처럼 하나님 자신의 최고의 사랑을 담아서 창조사역을 펼치셨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의 모습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모습과도 연결된다.

*아래의 표는 위의 내용을 요약하여 나타낸 것이다. 


요한일서 5장 5~8절: 물과 피와 성령

위에서 확인했듯이,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통하여 성경책을 기록하실 때도 그 단어 하나하나마저 인간이 명확하게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그 사역의 의도를 알 수 있게 적어주셨고, 성경의 각 장과 절 속에서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와 은혜를 경험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성장에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인간의 모든 의지와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고 올바른 방법과 방향으로 연구하는 것이다.

겸손한 마음과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면서 성경책을 연구한다면, 그 속에서 아주 작지만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할 수 있다.

지금처럼 온 세상이 예수님의 재림의 소리로 가득한 이 시기에.. 우리의 모든 마음과 영혼과 정신을 하늘 지성소에 계신 예수님께 고정시켜야 하지 않을까?





구속자(가알) 욥기 19:25-26


욥기 19:25-26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1350)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위에 서실 것이라.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גָּאַל 스트롱번호 1350

1. 되찾다.   2. 레 25:25. 3. 레 27:13
발음 [ gâʼal ]
구약 성경  / 59회 사용
  • 1. 원형  되찾다, 무르다.
    • a. 원형 [밭이나 농장] 레25:25, 룻4:4, 6.
    • b. 원형 [하나님께 봉헌된 것] 레27:13,15,19,20,31.
    • c. 원형 [노예] 레25:48,49
  • 2. 원형 앙갚음하다, 복수하다[דָּם이 수반됨], 민 35:19, 신19:6,12, 수20:3, 삼하14:11.
  • 3. 원형 능동태 분사형인 גֹּאֵל: 친족, 레25:25, 민5:8, 룻3:12.
    a. 원형 니팔형: 되찾아지다, 돌려보내지다, 레25:30, 레27:20,27,28,33.
    문법설명 / 미완료형 יִגְאַל

  • 관련 성경 / 
    ☞속량하다(출 6:6, 시 103:4, 사 63:4), 무르다(레 25:25, 27:20, 룻 4:4), 주장하다(욥 3:5), 구원하다(시 106:10), 건지다(창 48:16), [명] 보수할 자(민 35:12, 24, 27), 원수갚는 자(삼하 14:11), 속량(사 52:3), 기업 무를 자(룻 3:13, 4:1,14), 친족(민 5:8, 룻 3:12),
    보복하는 자(민 35:21, 수 20:5), 족속(왕상 16:11), 대속자(욥 19:25, 시 19:14, 사 41:14).
히브리 말에는 “가알”(gaal)이라는 동사가 있습니다.
이는 팔린 것을 다시 산다, 구속한다(redeem)는 의미입니다.
이 단어의 파생어인 명사는 고엘(goel, redeemer)로서 구속자(救贖者), 즉 자신의 희생으로 남을 자유하게 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히브리 말에는 “가알”(gaal)이라는 동사가 있습니다. 이는 팔린 것을 다시 산다, 구속한다(redeem)는 의미입니다. 이 단어의 파생어인 명사는 고엘(goel, redeemer)로서 구속자(救贖者), 즉 자신의 희생으로 남을 자유하게 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고엘은 친척 중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서 “근족”(kinsman-redeemer, 近族)이라고 부르는데, 지금과 같이 핵가족의 시대에는 친척의 의미가 그리 심각하지 않지만, 성경이 적혀지던 고대사회에서는 근척 고엘에게 부여된 사명이 많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만일 가까운 친척이 이유 없이 사망을 당한 경우에 이 친족은 피의 보복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원수를 갚은 자가 되어 무죄한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막아야 했습니다. 형법제도가 발전하지 않았던 고대에, 사망 사건이 생긴 후에는 근족이 억울한 사망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을 수 있었습니다.

둘째는 경제적인 책임을 지는 사람이 이 “고엘”입니다. 이 근족은 다른 근족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져서 종으로 팔릴 때, 대가를 지불하고 자유를 찾아주는 구원자, 구속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이 의무를 행하는 것은 영광스런 일이었고, 이 일을 행함으로 유대 사회에서 살아가는 유대인이 종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서로를 도와야 하였습니다.

셋째는 해방자의 역할 뿐만 아니라 기업을 물러주는 자가 되었습니다. 종으로 팔리기 전 사람들의 자신의 땅을 모두 잃어버리게 되어있습니다. 당시의 중요한 의식주의 기반인 농토를 잃어버리는 것은 종과 같은 소작의 상태로 떨어지는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이 고엘은 어려운 친척의 농토, 즉 기업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역할을 합니다.

넷째로 근족의 가족에 남자들이 없고 여성 홀로 남아있어 아이를 낳을 수 없을 때, 근족이 그 여인에게 들어가 아이를 낳아줌으로 죽은 남편의 대를 잇는 수혼(嫂婚)을 해야했습니다. 즉 형이나 동생의 대를 잇기 위하여 형수나 제수에게 아들을 낳아 돌아가신 분의 대를 이어주는 것입니다.

창세기 38장에서 시아버지인 유다는 자신의 막내 아들, 셀라를 며느리 다말에게 주어 자식을 낳아주어야 합니다. 유다는 다말의 남편인 엘이 죽고, 다시 둘째 아들 오난도 죽자, 이제는 마땅히 고엘의 사명을 감당하여야 할 셀라를 주지 않고 다말에게 주지 않고 친정으로 돌려보냅니다. 다말은 자신을 창녀로 속여 시아버지를 통해 임신하고, 나중에 자신을 불륜으로 죽이려는 시아버지에게 화대 대신 징표로 받은 그의 도장과 지팡이를 보여줍니다. 처절한 권리투쟁을 한 다말은 시아버지에게 “나보다 옳다”는 칭찬을 듣습니다. 다말은 유다를 통하여 예수님의 조상이 됩니다. 예수님은 버림받아 잊혀진 다말과 같은 우리를 신부로 삼으신 우리의 구속자, 고엘입니다.

구속에서 구속된것을 아시는가?

디도서 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구속되다
lutrovw(뤼트로오) 몸 값을 치르고 되찾다 to ransom, 속량하다 redeem.
lutrovw는 luvw에서 온 말이다.
동사 뤼트로오는 '속전으로 자유롭게 하다'를 의미한다. 능동태는 예를 들면 전쟁 포로를 석방하는 자들의 행위를 의미한다. 여기서부터 '속전을 받고 자유롭게 하다'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 단어는 또한 속전을 주는 자에 대해서 사용되었으며, 이것에서 '속전으로 사다'를 의미하게 되었다. 중간태로 '속전을 주고 사다'를 의미한다(참조: F. Buchsel).
뤼트로오는 70인역본에서 103여회 나오며 9개의 히브리어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이 동사는 70인역본에서 파다(몸 값을 받고 석방하다)의 역어로 40회, 가알(구속하다, 친족으로 행동하다)의 역어로 45회 사용되었다. 그리고 그 밖에 이 동사는 아랍(짐승의 목을 꺾다, 출13:13?); 팔레트(석방, 해방, 시32:1); 파차(나누다, 열다 open, snatch away, 시144:10); 파락(멍에를 벗기다, 애5:8)과 아람어 페락(단4:24); 카나(얻다, 획득하다, 출15:16); 사가브(일어나다 시59:1) 아람어 셰지브(구원자, 단6:28[27])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뤼트루스다이(lutrou'sqai)가 고엘의 역어로 쓰인 주된 용법은 사40장 이하에 나온다.
처음에 이 개념은 하나님께서 애굽 등에게 이스라엘을 위한 속전을 주신다는 것을 시사하였으나(사45:13),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고레스에게 아무런 속전도 지불할 필요가 없으시며, 오히려 이방인들을 이스라엘의 자발적인 취득물로 주신다는 보다 대담한 사상이 나타난다. 따라서 구속은 아무 속전도 받지 않고 거저 주시는 은혜의 행위이다.
뤼트루스다이(lutrou'sqai)가 피드욘의 역어로 사용될 경우에는 대속제물에 의한 장자의 속량이나 노예 상태에서 해방, 특히 출애굽의 해방(신7:8, 등)을 나타낸다.
이사야에서와 마찬가지로 신명기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해방시키실 때 속전을 지불하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뤼트루스다이(lutrou'sqai)는 두 개의 서로 다른 히브리 단어를 충분히 포괄할 수 있다. 뤼트루스다이(lutrou'sqai)는 죄로부터가 아니고 주로 고통으로부터의 구원이기는 하지만, 이스라엘 및 의인들의 구원에 대해 매우 많이 언급하는 시편들(시144:10, 26:11, 31:5)에서 두 히브리 단어를 대신하여 사용된다.
죽음은 최후의 위기이며,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은 곧 죽음으로부터의 보호를 의미할 수 있으나(시103:4), 그것은 또한 죽음을 맛보지 않는 구속일 수도 있다(시49:7이하).
여기에서 어떠한 속전도 소용이 없으나, 하나님께서는 음부에서 영혼을 구해내실 수 있다.   죄로부터의 구속이라는 개념이 약한 것은 코페르 어군이 의식적 속죄라는 부가적 요소를 지닌 이러한 영역에 적용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구속(救贖)
1) 구속의 의미
구속(救贖)을 구속(拘束)으로 혼돈하는 이들이 많다.

(딛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오늘의 말씀이 예수님께서 나에게 어떻게 하셨다는 말씀이다?
구속이라는 말을 알면서도 또 많이 헷갈리는 말인 것 같다.

구속은 속전을 주고 자유롭게 해 주는 것을 말한다.
구속은 어떤 매임에서 풀어 주고 놓아 주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아들의 십자가의 피는 속전의 대가였다.
십자가 지시고 피를 흘리심으로 속전의 대가를 치르셨던 것이다.

구속(救贖)은 구속(拘束)이 아니라 구속(救贖)이다.

구속(救贖)된 사람으로 살자!
1) 구속(救贖)된 몸이 다시 구속(拘束)으로 돌아가면 않된다.
물론 원죄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겠지만 옛날로 돌아감이 구속(拘束)이다.
옛날의 삶에서 하나님께로 향함이 구속(救贖)이다.

2) 구속(拘束)에서 구속(救贖) 되었다!
죄에서 구속(救贖) 된 것이다.
그릇된 길에서 구속(救贖) 된 것이다.
그릇된 생각에서 구속(救贖) 된 것이다.
그릇된 행동에서 구속(救贖) 된 것이다.

구속(拘束)에서 구속(救贖)으로 살자!

명절 때면 교도소 같은 곳에서 특별 사면되어 출소하는 분을 보는가?
그를 마중 나온 분들이 얼싸 안고 함께 기뻐하는 모습을 보았는가?
미신이지만 다시 들어가지 않겠다고 뭘 사 먹는 것이 있는데 보셨는가?

여러분들은 구속(救贖) 되셨기에 어떤 기쁨이 있는지?
여러분들은 구속(救贖) 되셨기에 어떤 다짐을 하시는지?
날마다 두부 먹는 심정으로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자!

하나님의 친 백성으로 선한 일에 아름답게 쓰임이 되자!

구속에서 구속된 것을 모르면 그것은 자유가 아닌 방종이 된다.
자유국가일수록 법이 엄격하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의 법을 따라 살 때 더 자유해진다.



가알(동사형) 되사다 속량하다, 구속하다 , 친족의 역할을 하다
고엘(분사형) 기업무를 자

1350, 가알)

되 사다, 속량하다, 구속하다, 근친의 역할을 행하다

가알(동사)은 기본어근이며, '되사다, 도로 찾다, 속량하다, 구속하다 redeem, 근친 역할(권리, 의무)을 행하다'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어근은 '자기 친족을 어려움이나 위험에서 구하다'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 어근과 매우 유사한 어근 파다([d"P; , 6308): 구속하다 redeem) 사이의 한 가지 차이점은, 일반적으로 가알(la'G: , 1350)의 강조점이 근친의 특권이나 의무인 속량에 있다는 데에 있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100회 이상 나오며, 칼형과 니팔형으로만 사용되었다.

가알은 착하고 진실한 사람이 자기의 친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포함하는 4개의 기본적인 상황에서 사용되었다.

(a) 첫째로, 가알은 오경의 법령에서 궁핍한 때에 판 밭을 되사는 것이나 가난할 때 자신을 판 이스라엘인 노예를 자유롭게 하는 것을 언급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이런 매입과 무르는 일은 근친의 의무였다(레 25:25-54).

레 25:25에서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라고 하였다. 만약에 자신이 부유하게 되면 그 사람 자신이 그것을 '무를' 것이다(레 25:26). 가난한 자는 자기 자신을 동족 이스라엘인에게나(레 25:39)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타국인(레 25:47)에게 팔기도 하였다. 속량할 책임은 가장 가까운 친척 - 형제, 삼촌, 사촌들, 가족의 혈족 - 에게 있었다(레 25:25, 레 25:48, 레 25:49).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 친척을 속량한 redeemed 자(혈연자)는 '근족 - 구속자'로 알려져 있었다.

(참조: EDBW).

가난한 자의 구제에 관한 가장 유명한 실례는 수혼법에 대한 구약성경의 증거가 가장 광범위하게 미치는 룻기에 있는 것 같다. 신 25:5-10에 의하면, 남편의 형제는 후사 없는 과부를 취하여서 씨를 영속시키고, 남자 후손과 결부되어 있는땅의 계승을 보증해야 했다. 여기에서 근친은 야밤이라고 불리어진다. 어근 가알은 사용되지 않는다.

룻의 상황에서는 두 가지 것들, 즉 밭과 수혼이 언급된다. 근친은 밭을 사는 것을 기꺼워했지만, 룻과 결혼하는 것은 기꺼워하지 않았다.

문제의 요지는 나오미가 가난하여 밭을 팔 수 밖에 없었을 때, 근친은 그녀를 위해 그 밭을 되사야 했다는 데 있다. 그는 후사 없는 형제의 과부를 위해서 이 일을 기꺼이 했다. 그가 룻과 결혼하여 그들의 기업을 지속시킬 자손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그는 거부하였으며 보아스가 개입하였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것, 즉 친족과 수혼은 구별되어야 한다. 고엘(구속자)이란 단어는 후자의 제도를 가리키지 않는다. 레게트(Leggett)는 룻기에 구속적이고 메시야적인 유형론의 주제가 들어있다고 보았다. "고엘(goel)로서의 보아스의 행동들에서 우리는 보아스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가 예시되어 있음을 보았다. 보아스가 구속의 권리를 소유하였으면서도 분명히 룻을 위하여 개입할 의무는 없었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다. 보아스가 이 가난한 과부들의 곤경을 보았을 때 그의 생애가 여호와와 여호와의 율법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었으므로 그들을 구원하러 왔던 것과 같이 메시야의 경우도 그의 생애가 하나님의 법에 의해 지배되고 또한 그가 가난한 자들과 억압 받는 자들을 공정하고 정당하게 대우하실 것이라는 사실이 예언되었다(시 72:2, 시 72:4, 시 72:12, 시 72:13, 사 11:4).

(b) 둘째로, 가알은 재산이나 여호와께 바쳐진 희생제물 아닌 짐승들을 무르는 것, 혹은 부정한 짐승들의 첫 소산을 무르는 것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레 27:11-33).

이 사상은 인간이 교환물로 그에 상응하는것을 여호와께 바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속전은 부정직한 교환을 피하기 위해 약간의 추가 몫이 제공되었다. 이런 경우에 무르는 자는 친족이 아니라 재산의 주인이었다.

(c) 셋째로, 가알은 살해당한 사람을 대신하여 "피의 보수자"(RSV '보복자' revenger)가 되는 가장 가까운 친족을 언급하는데 사용되며, 칼 분사 고엘로 나타난다.

고엘은 구속자이며, 이 구속자는 '피의 보수자'로 불리우는데, 그의 임무는 자신의 친척을 살해한 자를 처벌하는 것이다(신 19:6). 이 사상은 가까운 친족이 생명에는 생명으로 지불해야 한다는 것임에 틀림없다. 돈을 지불함으로서 집을 재매입하거나 노예를 속량할 수 있는 것처럼, 친족의 잃어버린 생명은 마땅히 살인자의 그에 상응하는 생명으로 지불되어야 한다. 친족은 피의 보수자이다. 이런 사형 제도는 피비린내 나는 숙원과 구별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고엘은 죄없는 사형 집행인이었으며 따라서 살해되어서는 안되었기 때문이다. 이 단어는 '보수자'라는 의미로 12회 나온다(민 35:12, 민 35:19, 민 35:21, 민 35:24, 민 35:25, 민 35:27, 신 19:6, 신 19:12, 수 20:3, 수 20:5, 수 20:9). (참조: R. L. Harris).

(d) 넷째로, 가알은 하나님께서 '구속자'로서 '구속하시는 행위'에 대해 사용되었다.

출 6:6에서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 내며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구속하여"라고 약속하신다(출 6:6, 참조: 시 77:15). 이스라엘은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주께서 그 구속하신 백성을 은혜로 인도하시되"(출 15:13). "하나님이 저희의 반석이시요 지존하신 하나님이 저희 구속자이심을 기억하였도다"(시 78:35).

이사야서에는 '구속자'라는 단어가 하나님을 지칭하여 13회 나오는데 모두 사 41- 63장에서 사용되었다.
가알은 하나님에 대해 9회 사용되었으며, 사 43:1에서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가알은 애굽으로부터의 구원(사 51:10, 사 63:9)과
바벨론의 포로생활로부터의 구원(사 48:20, 사 52:3, 사 52:9, 사 62:12)을 언급하는데 사용되었다.

이스라엘의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사 41:14)이며 '너희의 왕 이스라엘의 창조주'(사 43:14, 사 43:15)이며 '만군의 여호와'(사 44:6)이며 '야곱의 전능자'(사 49:26)이다. 그의 구원에 참예하는 자는 '구속 받은 자'이다(사 35:9).

시편에는 종종 영적인 구원이 육적인 구원과 병행되어 나온다. 예를 들면 시 69:18., "내 영혼에게 가까이 하사 구속하시며 내 원수를 인하여 나를 속량하소서". 시 103:2, 시 103:4.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윤택을 잊지 말찌어다...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이 그러하다(참조: EDBW).

유명한 구절, 욥 19:25에서 고엘이란 단어는 흠정역성경에서 '구속자' redeemer로 번역되며 어떤 이들은 이 단어가 속죄의 사역을 하러 오실 그리스도의 오심을 나타내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것은 히브리어 파다에 의해 더욱 특징적으로 표현될 것이다. 이제 욥 19:25에 나오는 이 단어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결국에는 욥을 죽음의 먼지에서 구속할 친구이자 친족으로서의 하나님의 사역과 더욱 정확하게 관련된다. 욥 19:26의 난해한 어구, "이 가죽...후에"는 다른 모음들과 함께 "내가 깨어난 후에"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NIV 각주와 욥 14:12-14을 참조하라. 욥 14:12-14에서 부활에 관한 욥의 질문은 하나님께서 결국에는 그를 돌아보시며 욥은 나무처럼 제 2의 성장을 할 것이라는 그의 소망에 의해 절정에 달하게 된다 - 욥 14:14의 할리파는 욥 14:7의 할랍에 대한 응답이다). 어쨌든 욥은 마침내 자기 자신의 눈으로 자기의 고엘이신 하나님을 볼 것으로 기대한다(참조: R. L. Harris).



구속(救贖)과 구원(救援)

구속(Redemption)

히브리어 – ‘파다’, ‘코페르’, ‘가알’,  명사= ‘게울라’.  헬라어 – λυτρο 어근(語群) ‘해방’ 이란 의미가 있고, 대가를 지불하고 속박 상태에서 풀려나는 것을 구속(救贖)이라 한다. 국어사전에는 구속이란 “기독교에서 에수가 십자가의 보혈(寶血)로 만민의 죄를 대신 씻어 구원한 일-대속(代贖)”으로 되어 있다.

1) 구약(Old Testament) – 히브리어 ‘파다’와 파생어들이 구속이란 의미로 가장 많이 사용되었는데, 이 단어들은 주로 율법에 따라 하나님께 속한 초태생의 사람이나 가축을 대속할 때 사용하였다(예,출13:13).  그러나 ‘파다’란 말이 간혹 상실된 생명을 다시 회복시킬 때 지불하는 ‘속죄금’ (보상금)이란 의미로도 사용되었다(출21:30; 삼상14:45; 참조-출30:12).

히브리어 ‘코페르’(몸값, 속전, 속죄금, 속죄) : 하나님께서 ‘파다’[몸값(배상금)을 치르고 되찾다. 속전하다, 구속하다, 건지다, 속량하다, 대속하다, 구원하다, 속하다]의 주체가 되실 때 출애굽 사건을 일반적으로 구속 사건이라 부른다(예, 신7:8’ 9:26; 삼하7:23; 시78:42). 이와 같은 경우에는 대가에 대한 지불보다는 하나님의 주관적인 구속 행위가 더 강조되고 있다.

히브리어 동사 ‘가알’과  명사 ‘게울라’는 자신을 종으로 팔아버린 곤궁한 친족을 구속해야 하는 의무나, 이미 팔아버린 친족의 땅을 다시 구입해야 하는 의무와 관련되어 있다(레25:25-26, 33, 47-49; 룻4;4, 6). 이와 같이 구속의 의무를 수행하는 자를 가리켜서 구속자(‘고엘’, 예, 룻3:12의 ‘기업 무를 자’라 불렀다) 구속자는 또한 친족의 부당한 죽음에 대해서 복수까지 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욥19:25)라는 욥의 고백은, 그에게 닥칠 부당한 죽음을 구속자가 보복해 줄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와 같은 친족의 구속 의무 개념을 확대시킨 것이 바로 애굽의 노에 상태에 있던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이끌어 내신 하나님의 구속 사건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서에서 자신이 구속자라고 말씀하셨는데(예, 사41:14, 47:4), 이 때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행하실 구원 사역을 이전에 있었던 출애굽 사건과 비교하면서 강조하였다. 여기에서 주의할 점은 위에서 언급한 히브리 단어들이 항상 ‘구속’이나 ‘속량’이란 의미로만 사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문맥에 따라 이 단어들의 의미가 변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2) 신약(New Testament) – 신약에서 구속이란 개념은 주로 헬라어 ‘뤼트로’ 어군(語群)으로 표현되었다.  명사 ‘뤼트론’(λυτρον… 몸값, 속전), ‘뤼트로시스’(λύτρωσις… 속전, 구속), ‘아폴뤼트로시스’(ὰπολύτρωσις… 몸값, 속전, 구속, 의무의 면제, 해방), ‘안틸뤼트론’(ὰντίλυτρον … 몸값, 속전), 동사 ‘뤼트로오’(λυτροω) 등.  그리스도의 죽음을 속전으로 이해한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代贖物)로 주려함이라”(사53:12) .


앞에서 언급된 헬라어 단어들이 구약의 구속 개념을 완전하게 전달해 준다고는 볼 수 없으나 설명하는데는 크게 도움이 된다. 일상 이러한 헤라어 단어들은 ‘보상’이란 의미를 지닌다.  노예들이 자유를 얻기 위하여, 또는 죄수들이 석방되기 위하여 제사의식 때 신에게 바치는 돈을 지칭하가도 했다. 아무튼 이스라엘의 구속 개념과 여러 면에서 유사했던 이 단어들은 그리스와 로마 사회에 여호와의 구속을 이해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바울 서신에서 ‘아폴뤼트로시스’(ὰπολύτρωσις)는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얻게 된 현세의 구속 (롬3:24; 엡1:7; 골1:14; 참조 고전 1:30), 장래에 얻게 될 종말론적 구속(엡1:14, 4:30) 모두를 지칭할 때 사용하였다.  또한 이 단어가 히브리서 11:35에서는 악형의 고통에서 벗어남을 가리키는 일상적인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헬라어 동사 ‘아고라조’(àγοράζω … 사다, 구입하다)는 시장에서 사용하던 말인데, 성경에 사용되고 있다. 이 말은 본래 헬라 사회에서 노예를 구입할 때 주로 사용하였다. 그런데 이와 같은 용례가 하나님의 구속을 이해할 수 있는 가교 역활을 해 주었다(고전6:20, 7:23; 벧후2:1; 계5:9, 14:3).

곧 노예를 구입하기 위해서는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하며, 구입한 노예는 그 주인이 바뀌게 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보혈이란 대가를 지불하여 하나님의 ‘의의 종’이 된 그리스도인들의 모습과 일맥 상통한다(롬5:9; 6:18-20). 후에 교부들에 의하여 속죄 교리가 발전하게 되자, 누구에게 속죄의 대가를 지불했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아고라조’(àγοράζω)의 강조형인 ‘엑사고라조’(ὲξαγοραζω)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율법의 저주나 속박으로부터의 구속을 나타낼 때 사용하였다(갈3:13, 4:5). 이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 전환점이 되었다.

‘구속자’ (속량하는 자 … ‘뤼트로테스’λυτρωτής)란 말이 신약에서 모세에게 사용되고 있는데(행7:35) 이는 모세뿐만 아니라 구약성경에 있는 여러 인물들이 구속사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고 있는 것이다.




분쟁(요한복음 10:19) / 스키스마(schisma) σχίσμα


이 말씀을 인하여 유대인 중에 다시 분쟁이 일어나니.
At these words the Jews were again divided.

분쟁(分爭) 4978. 스키스마(schisma) σχίσμα, ατος, τό    

1. 찢어지기.   2. 터진 곳. 3. 분열
발음 [ schisma ]
어원  / 4977에서 유래
  • 1.  찢어지기, 분열.
    • a.  [문자적으로] 터진 곳, 찢어진 곳, 마 9:16, 막 2:21.
    • b.  [상징적으로] 분열, 불화, 요 7:43, 9:16, 고전 1:10.
  • 관련 성경  /  쟁론(요 7:43), 분쟁(고전 1:10, 12:25), 헤어짐(마 9:16, 막 2:21) 

* 4977 σχίζω   

1. 찢다.   2. 눅 5:36.   3. 갈라지다
발음 [ schizō ]

성령 훼방 죄 / 블라스패미아(blasphēmia) βλασφημία



성령 훼방 죄


훼방(988)  블라스패미아(blasphēmiaβλασφημία, ας, ἡ 스트롱번호 988

1. 비방.  2. 막 7:22.  3. 하나님에게 직접 관련되지 않은 사악한 말.
발음 [ blasphēmia ]
어원  / 989에서 유래
  • 관련 성경  /  모독(마 12:31, 막 2:7, 눅 5:21, 계 13:1), 비방 (막 7:22, 골 3:8), [명] 신성모독(요 10:33).

989. βλάσφημος, ον 스트롱번호 989

1. 모욕적인.  2. 중상하는.  3. 상스러운
발음 [ blasphēmŏs ]
어원  /  984와 5345의 파생어에서 유래
  • 1.  모욕적인, 중상하는, 상스러운, 행6:11,13, 벧후2:11, 계13:5. 모욕하는 자, 딤전1:13, 딤후3:2.
  • 관련 성경
    모독하는(행6:11), 비방하는(딤후3:2, 벧후2:11). [명] 비방자(딤전1:13), 거스르는(행6:13).

984.  βλάπτω 스트롱번호 984

1. 방해하다.  2. 해를 끼치다.  3. 상처를 주다
발음 [ blaptō ]
  • 1.  방해하다, 해를 끼치다, 상처를 주다, 막16:18, 눅4:35.
  • 관련 성경
    해를 받다(막16:18), 상하다(눅4:35).


5345. φήμη, ης, ἡ 스트롱번호5345

1. 소문.  2. 소식.  3. 마 9:26
발음 [ phēmē ]
어원  / 5346에서 유래
  • 1. 소문, 소식, 마 9:26, 눅 4:14.
  • 관련 성경  /  소문(마 9:26, 눅 4:14).


마태복음 12:3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마가복음 3:29
누구든지 성령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 하시니.

*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
공동번역에서는 '사람들이 어떤 죄를 짓거나 모독하는 말을 하더라도 그것은 다 용서받을 수 있지만'으로 번역되어 있다.
헬라어 본문의 문자적인 의미 역시 '사람에 의해 저질러진 죄와 비방은 사하심을 받게 될 수 있으나'의 뜻으로 이래된다.
이는 하나님의 자비가 무한, 풍성하므로 인간의 모든 죄악이 도말(塗抹)될 수 있다는 성경의 보편적 진리를 입증해 준다(시 63:3 ; 86:5 ; 130:3,4 ; 사 1:18 ; 미 7:19 ; 요일 1:7).
더욱이 이 진리를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의 예수의 대속사역은 완전, 충만하여 그 어떤 죄악일지라도 능히 용서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한편 여기 언급된 '훼방'에 해당하는 헬라어 '블라스페미아'(βλασφημια)는 '심한 비방'이나 상대방에 대한 지독한 '모독'(9:3) 또는 어떤 대상은 '반대하여 말하다'(32절)는 뜻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사람이 하나님을 비방하는(blasphemy) 행위에는 매우 심각하게 대처(reaction)했다(26:65).
그러나 예수는 이 부분에서 인자, 곧 자신을 거역하는 행위와 심지어 암묵(unspokenness)적 의미에서이지만 하나님을 훼방하는 행위 조차도 용서의 가능성이 주어짐을 시사하셨다.

*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
이 선언은 하나님의 자비가 예수의 대속 사역에 어떤 결함이나 불충분성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더욱이 성삼위 하나님의 위상(位相) 중 제 3위에 해당하는 성령의 탁월성을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도 없다.
한편 '성령을 훼방하는 것'이란 성령의 이지적 사역을 사단의 능력으로 간주하는 것이라 보는 학자들이 있다(Broadus, Chafer, Gebelein). 그런 점에서 바리새인들은 이미 그 죄를 범하고 말았는데, 그들은 성령의 능력을 덧입은 예수의 이적을 바알세불의 소치(result)로 매도했던 것이다(24절).

이와 대조적으로 본문을 단순히 예수를 헐뜯고 비난하는 바리새인들에 대한 경고일 뿐이라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성령을 훼방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성령의 독특한 사역에 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즉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로부터 영원 발생하신 분으로서(요 15:26 ; 16:7 ' 롬 8:9 ; 갈 4:6) 창조와 구속을 완성하는 사명을 맡으셨다.
그런 까닭에 그분은 죄인들에게 죄를 자각케 하고, 예수의 초청을 수락(acceptance)케 하며, 영원한 진리를 깨닫게 함으로써 더 성숙한 신앙 인격체로 자라나게 하신다.
그러므로 비록 성부를 경원(敬遠)시 하고 성자를 미워한 자라 할지라도(딤전 1:13), 이 성령의 거듭나게 하는 역사로 인해 참회(懺悔)의 자리를 설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 성령이 역사를 거부하고 적극적으로 비방, 모독하는 것은, 곧 참회와 중생에 이를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차단(遮斷)해 버리는 일로서 결국 심판에 회부될 수밖에 없는 불행한 결과를 낳게 된다(요 3:36). 한편 신.구약을 통틀어 용서받을 수 없는 죄에 대한 규정한 것이 있다.
그것은 '짐짓 범한 죄', 곧 의지적 결단에 의해 자행한 죄이다(민 15:30 ; 히 6:4-6 ; 10:26-32 ; 요일 5:16).
다시 말하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이며, 은혜의 빛이 어떻게 비취는가를 알면서도 의식적으로 그것으로부터 돌아서는 것을 말한다.
이는 부지중(不知中)에 교회를 핍박했던 바울의 경우(고전 15:9)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범죄이다.
이같은 범죄는 '성령을 훼방하는 것'과 긴밀한 관련성이 있다.
즉 예수가 행하시는 놀라운 사역들(치유, 금식, 부활하심 등)이 분명히 하나님과 성령의 능력안에서 행해지는 것임을 충분히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완강하게 부인하는 것은 결단코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의 역사가 분명한 것임을 인지하면서도 의도적으로 그것을 거부하고, 성령께서 인간의 내면에 들어오셔서 감동, 감화하심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고의적으로 배척하는 것은, 곧 용서의 가능성을 완전히 막아버리는 일아 된다.

결국 '성령을 훼방하는 것'이란 어떤 특수한 경우에만 적용시킬 수 없는 일로서, 죄를 깨닫게 하고 참회케 하는 성령의 사역을 적극적으로 방해하거나 고의적(故意的)으로 성령에 대항하려는 고집스럽고도 악의에 찬 심령과 그 모든 활약상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Alford, Plummer, Robinson 등).

아가도스와 칼로스





아가도스 & 칼로스 

* 아가도스는 절대적 선으로 오직 하나님만이 아가도스로 존재합니다.
칼로스는 상대적 선으로 세상 사람들과 그리스도인의 삶을 비교할 때 그리스도인들이 땅의 소금으로 세상의 빛으로 살아갈 때 그와 같은 삶을 상대적 선이라고 합니다.

선한(18) 아가도스(agathŏs) ἀγαθός, ἡ, όν  

1. 선한.   2. 적합한.  3. 완전한
발음 [ agathŏs ]


선한(2570) 칼로스(kalŏs) καλός, ἡ, όν   

1. 아름다운.  2. 좋은 유용한. 3. 흠이 없는
발음 [ kalŏs ]

'착한'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는 헬라어로 '아가도스'와 '칼로스'입니다.
두 단어가 혼용해서 쓰이기도 하지만 '칼로스'라는 단어가 훨씬 폭 넓고 깊은'선'을 가리킬때   쓰이는 단어입니다.

요한 10:11. 나는 선한(칼로스 G2530-가치있는)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빌립보서 1: 6. 너희 속에 착한(아가도스 G18)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니

* 예레미야스에 의하면 그 두단어는 서로 혼용해서 쓰였던 단어입니다.

성도의 착한 일, 성도의 착한 행실은 세상의 선악기준에 의한 착한 일이라기보다 예수님의 착한 행실,혹은 예수님의 착한 행실에서
기인한, 성도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착한 행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것을 소금과 빛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착한 행실은 이 세상속에서 순종으로 비움으로 자기부인으로 십자가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의 착한 행실에 의해 교회가 탄생한 것입니다.
성도의 삶 속에서 바로 그 새 창조의 행위 자기부인과 순종으로 지어지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 과정 그게 하늘나라 백성들의 세상 속 착한 행실입니다.

사도행전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바로 이 예수의 착한 일이 성도에게서 그대로 재현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소금과 빛의 삶, 착한 행실은 자기를 부인하고,수난의 삶을 통과하며, 하나님의 새 창조 역사에 동참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성도의 착한 행실, 순종의 착한 행실, 십자가의 착한 행실이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지면,그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이 된다는 말입니다.
즉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상태를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성도의 삶 속에서 가입을 하여 세상은 도처히 감당해 낼 수 없는 인내와 수고와 섬김과 순종의 삶이 성도의 삶에서 드러나게 될 때 거기에서 하나님의 영광,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세상에 증거 되는 것입니다.

내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이 드러나는 삶,그 삶이 바로 착한 행실이고 빛과소금의 삶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5:14-16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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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딤전 6:12)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9)

<선함>을 의미하는 헬라어는 <아가도스-άγαθός>와 <칼로스-καλός>입니다.
두 단어가 혼용하여 사용될 때가 많습니다.
<아가도스-άγαθός>는 모든 사람이 생각하는 <선>의 개념입니다.
“도덕적으로 선한, 올바른, 유익한”의 뜻입니다.
<칼로스-καλός>는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모습”을 의미합니다.
<아가도스-άγαθός>가 윤리, 도덕적인 <선>을 의미한다면, <칼로스-καλός>는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모습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아름다움은 <아가도스>와 <칼로스>에 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도 내면의 깊은 아름다움과 성품, 인격이 흘러 넘칩니다.
<아가도스>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모든 마음을 드리는 인생이 <칼로스>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그 곳에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칼로스>의 삶, 그 착한 행실이 모든 사람에게 <아가도스>가 되어서 나타나는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 기쁨이 흘러 넘치는 인생입니다.
하나님을 깊이 만난 영혼은 <아가도스-άγαθός>와 <칼로스-καλός>의 아름다움으로 충만할 것입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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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브 (히 2896, טוֹב : good 562회)
아가도스 (헬 18, ἀγαθός : good 101회)

"Ἀγαπητέ, μὴ μιμοῦ τὸ κακὸν, ἀλλὰ τὸ ἀγαθόν.

 ὁ ἀγαθοποιῶν, ἐκ τοῦ Θεοῦ ἐστιν; ὁ κακοποιῶν, οὐχ ἑώρακεν τὸν Θεόν."

 (Ἰωάννου γ 1:11 Greek)

"아가파테, 메 미무 토 카콘, 알라 토 아가돈.

 호 아가도포이온, 에크 투 데우 에스틴; 호 카코포이온, 우크 헤오라켄 톤 데온."

 (이오안누 감마 1:11 한글음독)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요한삼서 1:11 개역개정)

                                           I
※ '선한 또는 선'이라 번역된 히브리어 형용사 또는 명사

   '토브' (2896, טוֹב : good)와 '선함, 좋은 것'이라 번역된 남성 명사

   '투브' (2898, טוּב : goodness 32회)는 '선하다, 보기에 좋다'라는 동사

   '토브' (2895, טוֹב : to be good 25회)에서 유래한다.

※ '선'이라 번역된 헬라어 여성 명사

   '아가도쉬네' (19, ἀγαθωσύνη : goodness 4회)는 '선한'이라 번역된 헬라어 형용사

   '아가도스' (18, ἀγαθός : good)에서 유래한다. 그리고 '선을 행하다'라 번역된 동사

   '아가도포이에오' (15, ἀγαθοποιέω : to do good 10회)가 있다.

   동의어로 '선한'이라 번역된 형용사 기본어

   '칼로스' (2570, καλός : good 101회)와 '선을 행하다'라 번역된 동사

   '칼로포이에오' (2569, καλοποιέω : to do good 1회)가 있다.

                                            II
아래에서는 히브리어 '토브'그리고 헬라어 '아가도스'와 '칼로스'의 용례를 

살펴봄으로써 성경이 말하는 이들 원어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상고해 본다.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2896, 토브)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창세기 1:4 개역개정)

"너희가 이 일을 하였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은혜와 진리로 너희에게

 베푸시기를 원하고 나도 이 '선한 일'(2896, 토브)을 너희에게 갚으리니"

 (사무엘하 2:6 개역개정)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2896, 토브)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역대상 16:34 개역개정)

"또 주의 '선한'(2896, 토브) 영을 주사 그들을 가르치시며

 주의 만나가 그들의 입에서 끊어지지 않게 하시고

 그들의 목마름을 인하여 그들에게 물을 주어"(느헤미야 9:20 개역개정)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2896, 토브)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2896, 토브)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시편 14:1-3 개역개정)

"여호와여 내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주께서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2898, 투브)으로 하옵소서

 여호와는 '선하시고'(2896, 토브) 정직하시니

 그러므로 그의 도로 죄인들을 교훈하시리로다"(시편 25:7-8 개역개정)

"주는 '선'(2896, 토브)하사 '선을 행하시오니'(2895, 토브)

 주의 율례들로 나를 가르치소서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2896, 토브)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편 119:68, 71 개역개정)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2896, 토브)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가 6:8 개역개정)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4190, 포네로스)하니

 어떻게 '선한'(18, 아가도스)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18, 아가도스) 사람은 그 쌓은 '선'(18, 아가도스)에서

 '선한 것'(18, 아가도스)을 내고 '악한'(4190, 포네로스) 사람은

 그 쌓은 '악'(4190, 포네로스)에서 '악한 것'(4190, 포네로스)을 내느니라"

 (마태복음 12:34-35 개역개정)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18, 아가도스)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18, 아가도스)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마태복음 19:16-17 개역개정)

"나는 '선한'(2570, 칼로스) 목자라 '선한'(2570, 칼로스)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한복음 10:11 개역개정)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18, 아가도스)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2570, 칼로스)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18, 아가도스)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2556, 카코스)을 행하는도다"

 (로마서 7:18-19 개역개정)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선'(19, 아가도쉬네)과 '의'(1343, 디카이오쉬네)와

 '진리'(225, 알레데이아) 안에 있느니라"(에베소서 5:8-9 원문직역)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2569, 칼로포이에오) 낙심하지 말라"

 (데살로니가후서 3:13 개역개정)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18, 아가도스)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디모데후서 3:15-17 개역개정)

"'선을 행함'(15, 아가도포이에오)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2554, 카코포이에오)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베드로전서 3:17 개역개정)

                                         
위 말씀들을 종합해 보면,  히브리어 '토브'와 '투브' 그리고 헬라어 '아가도스'와 '칼로스'는 하나님의 속성으로 하나님을 찾는 것이 선이요아는 것이 선이요 기쁘시게 하는 것이 선이다.
이는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이 영적 예배요 진리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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