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자(가알) 욥기 19:25-26


욥기 19:25-26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1350)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위에 서실 것이라.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גָּאַל 스트롱번호 1350

1. 되찾다.   2. 레 25:25. 3. 레 27:13
발음 [ gâʼal ]
구약 성경  / 59회 사용
  • 1. 원형  되찾다, 무르다.
    • a. 원형 [밭이나 농장] 레25:25, 룻4:4, 6.
    • b. 원형 [하나님께 봉헌된 것] 레27:13,15,19,20,31.
    • c. 원형 [노예] 레25:48,49
  • 2. 원형 앙갚음하다, 복수하다[דָּם이 수반됨], 민 35:19, 신19:6,12, 수20:3, 삼하14:11.
  • 3. 원형 능동태 분사형인 גֹּאֵל: 친족, 레25:25, 민5:8, 룻3:12.
    a. 원형 니팔형: 되찾아지다, 돌려보내지다, 레25:30, 레27:20,27,28,33.
    문법설명 / 미완료형 יִגְאַל

  • 관련 성경 / 
    ☞속량하다(출 6:6, 시 103:4, 사 63:4), 무르다(레 25:25, 27:20, 룻 4:4), 주장하다(욥 3:5), 구원하다(시 106:10), 건지다(창 48:16), [명] 보수할 자(민 35:12, 24, 27), 원수갚는 자(삼하 14:11), 속량(사 52:3), 기업 무를 자(룻 3:13, 4:1,14), 친족(민 5:8, 룻 3:12),
    보복하는 자(민 35:21, 수 20:5), 족속(왕상 16:11), 대속자(욥 19:25, 시 19:14, 사 41:14).
히브리 말에는 “가알”(gaal)이라는 동사가 있습니다.
이는 팔린 것을 다시 산다, 구속한다(redeem)는 의미입니다.
이 단어의 파생어인 명사는 고엘(goel, redeemer)로서 구속자(救贖者), 즉 자신의 희생으로 남을 자유하게 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히브리 말에는 “가알”(gaal)이라는 동사가 있습니다. 이는 팔린 것을 다시 산다, 구속한다(redeem)는 의미입니다. 이 단어의 파생어인 명사는 고엘(goel, redeemer)로서 구속자(救贖者), 즉 자신의 희생으로 남을 자유하게 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고엘은 친척 중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서 “근족”(kinsman-redeemer, 近族)이라고 부르는데, 지금과 같이 핵가족의 시대에는 친척의 의미가 그리 심각하지 않지만, 성경이 적혀지던 고대사회에서는 근척 고엘에게 부여된 사명이 많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만일 가까운 친척이 이유 없이 사망을 당한 경우에 이 친족은 피의 보복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원수를 갚은 자가 되어 무죄한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막아야 했습니다. 형법제도가 발전하지 않았던 고대에, 사망 사건이 생긴 후에는 근족이 억울한 사망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을 수 있었습니다.

둘째는 경제적인 책임을 지는 사람이 이 “고엘”입니다. 이 근족은 다른 근족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져서 종으로 팔릴 때, 대가를 지불하고 자유를 찾아주는 구원자, 구속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이 의무를 행하는 것은 영광스런 일이었고, 이 일을 행함으로 유대 사회에서 살아가는 유대인이 종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서로를 도와야 하였습니다.

셋째는 해방자의 역할 뿐만 아니라 기업을 물러주는 자가 되었습니다. 종으로 팔리기 전 사람들의 자신의 땅을 모두 잃어버리게 되어있습니다. 당시의 중요한 의식주의 기반인 농토를 잃어버리는 것은 종과 같은 소작의 상태로 떨어지는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이 고엘은 어려운 친척의 농토, 즉 기업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역할을 합니다.

넷째로 근족의 가족에 남자들이 없고 여성 홀로 남아있어 아이를 낳을 수 없을 때, 근족이 그 여인에게 들어가 아이를 낳아줌으로 죽은 남편의 대를 잇는 수혼(嫂婚)을 해야했습니다. 즉 형이나 동생의 대를 잇기 위하여 형수나 제수에게 아들을 낳아 돌아가신 분의 대를 이어주는 것입니다.

창세기 38장에서 시아버지인 유다는 자신의 막내 아들, 셀라를 며느리 다말에게 주어 자식을 낳아주어야 합니다. 유다는 다말의 남편인 엘이 죽고, 다시 둘째 아들 오난도 죽자, 이제는 마땅히 고엘의 사명을 감당하여야 할 셀라를 주지 않고 다말에게 주지 않고 친정으로 돌려보냅니다. 다말은 자신을 창녀로 속여 시아버지를 통해 임신하고, 나중에 자신을 불륜으로 죽이려는 시아버지에게 화대 대신 징표로 받은 그의 도장과 지팡이를 보여줍니다. 처절한 권리투쟁을 한 다말은 시아버지에게 “나보다 옳다”는 칭찬을 듣습니다. 다말은 유다를 통하여 예수님의 조상이 됩니다. 예수님은 버림받아 잊혀진 다말과 같은 우리를 신부로 삼으신 우리의 구속자, 고엘입니다.

구속에서 구속된것을 아시는가?

디도서 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구속되다
lutrovw(뤼트로오) 몸 값을 치르고 되찾다 to ransom, 속량하다 redeem.
lutrovw는 luvw에서 온 말이다.
동사 뤼트로오는 '속전으로 자유롭게 하다'를 의미한다. 능동태는 예를 들면 전쟁 포로를 석방하는 자들의 행위를 의미한다. 여기서부터 '속전을 받고 자유롭게 하다'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 단어는 또한 속전을 주는 자에 대해서 사용되었으며, 이것에서 '속전으로 사다'를 의미하게 되었다. 중간태로 '속전을 주고 사다'를 의미한다(참조: F. Buchsel).
뤼트로오는 70인역본에서 103여회 나오며 9개의 히브리어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이 동사는 70인역본에서 파다(몸 값을 받고 석방하다)의 역어로 40회, 가알(구속하다, 친족으로 행동하다)의 역어로 45회 사용되었다. 그리고 그 밖에 이 동사는 아랍(짐승의 목을 꺾다, 출13:13?); 팔레트(석방, 해방, 시32:1); 파차(나누다, 열다 open, snatch away, 시144:10); 파락(멍에를 벗기다, 애5:8)과 아람어 페락(단4:24); 카나(얻다, 획득하다, 출15:16); 사가브(일어나다 시59:1) 아람어 셰지브(구원자, 단6:28[27])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뤼트루스다이(lutrou'sqai)가 고엘의 역어로 쓰인 주된 용법은 사40장 이하에 나온다.
처음에 이 개념은 하나님께서 애굽 등에게 이스라엘을 위한 속전을 주신다는 것을 시사하였으나(사45:13),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고레스에게 아무런 속전도 지불할 필요가 없으시며, 오히려 이방인들을 이스라엘의 자발적인 취득물로 주신다는 보다 대담한 사상이 나타난다. 따라서 구속은 아무 속전도 받지 않고 거저 주시는 은혜의 행위이다.
뤼트루스다이(lutrou'sqai)가 피드욘의 역어로 사용될 경우에는 대속제물에 의한 장자의 속량이나 노예 상태에서 해방, 특히 출애굽의 해방(신7:8, 등)을 나타낸다.
이사야에서와 마찬가지로 신명기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해방시키실 때 속전을 지불하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뤼트루스다이(lutrou'sqai)는 두 개의 서로 다른 히브리 단어를 충분히 포괄할 수 있다. 뤼트루스다이(lutrou'sqai)는 죄로부터가 아니고 주로 고통으로부터의 구원이기는 하지만, 이스라엘 및 의인들의 구원에 대해 매우 많이 언급하는 시편들(시144:10, 26:11, 31:5)에서 두 히브리 단어를 대신하여 사용된다.
죽음은 최후의 위기이며,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은 곧 죽음으로부터의 보호를 의미할 수 있으나(시103:4), 그것은 또한 죽음을 맛보지 않는 구속일 수도 있다(시49:7이하).
여기에서 어떠한 속전도 소용이 없으나, 하나님께서는 음부에서 영혼을 구해내실 수 있다.   죄로부터의 구속이라는 개념이 약한 것은 코페르 어군이 의식적 속죄라는 부가적 요소를 지닌 이러한 영역에 적용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구속(救贖)
1) 구속의 의미
구속(救贖)을 구속(拘束)으로 혼돈하는 이들이 많다.

(딛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오늘의 말씀이 예수님께서 나에게 어떻게 하셨다는 말씀이다?
구속이라는 말을 알면서도 또 많이 헷갈리는 말인 것 같다.

구속은 속전을 주고 자유롭게 해 주는 것을 말한다.
구속은 어떤 매임에서 풀어 주고 놓아 주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아들의 십자가의 피는 속전의 대가였다.
십자가 지시고 피를 흘리심으로 속전의 대가를 치르셨던 것이다.

구속(救贖)은 구속(拘束)이 아니라 구속(救贖)이다.

구속(救贖)된 사람으로 살자!
1) 구속(救贖)된 몸이 다시 구속(拘束)으로 돌아가면 않된다.
물론 원죄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겠지만 옛날로 돌아감이 구속(拘束)이다.
옛날의 삶에서 하나님께로 향함이 구속(救贖)이다.

2) 구속(拘束)에서 구속(救贖) 되었다!
죄에서 구속(救贖) 된 것이다.
그릇된 길에서 구속(救贖) 된 것이다.
그릇된 생각에서 구속(救贖) 된 것이다.
그릇된 행동에서 구속(救贖) 된 것이다.

구속(拘束)에서 구속(救贖)으로 살자!

명절 때면 교도소 같은 곳에서 특별 사면되어 출소하는 분을 보는가?
그를 마중 나온 분들이 얼싸 안고 함께 기뻐하는 모습을 보았는가?
미신이지만 다시 들어가지 않겠다고 뭘 사 먹는 것이 있는데 보셨는가?

여러분들은 구속(救贖) 되셨기에 어떤 기쁨이 있는지?
여러분들은 구속(救贖) 되셨기에 어떤 다짐을 하시는지?
날마다 두부 먹는 심정으로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자!

하나님의 친 백성으로 선한 일에 아름답게 쓰임이 되자!

구속에서 구속된 것을 모르면 그것은 자유가 아닌 방종이 된다.
자유국가일수록 법이 엄격하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의 법을 따라 살 때 더 자유해진다.



가알(동사형) 되사다 속량하다, 구속하다 , 친족의 역할을 하다
고엘(분사형) 기업무를 자

1350, 가알)

되 사다, 속량하다, 구속하다, 근친의 역할을 행하다

가알(동사)은 기본어근이며, '되사다, 도로 찾다, 속량하다, 구속하다 redeem, 근친 역할(권리, 의무)을 행하다'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어근은 '자기 친족을 어려움이나 위험에서 구하다'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 어근과 매우 유사한 어근 파다([d"P; , 6308): 구속하다 redeem) 사이의 한 가지 차이점은, 일반적으로 가알(la'G: , 1350)의 강조점이 근친의 특권이나 의무인 속량에 있다는 데에 있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100회 이상 나오며, 칼형과 니팔형으로만 사용되었다.

가알은 착하고 진실한 사람이 자기의 친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포함하는 4개의 기본적인 상황에서 사용되었다.

(a) 첫째로, 가알은 오경의 법령에서 궁핍한 때에 판 밭을 되사는 것이나 가난할 때 자신을 판 이스라엘인 노예를 자유롭게 하는 것을 언급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이런 매입과 무르는 일은 근친의 의무였다(레 25:25-54).

레 25:25에서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라고 하였다. 만약에 자신이 부유하게 되면 그 사람 자신이 그것을 '무를' 것이다(레 25:26). 가난한 자는 자기 자신을 동족 이스라엘인에게나(레 25:39)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타국인(레 25:47)에게 팔기도 하였다. 속량할 책임은 가장 가까운 친척 - 형제, 삼촌, 사촌들, 가족의 혈족 - 에게 있었다(레 25:25, 레 25:48, 레 25:49).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 친척을 속량한 redeemed 자(혈연자)는 '근족 - 구속자'로 알려져 있었다.

(참조: EDBW).

가난한 자의 구제에 관한 가장 유명한 실례는 수혼법에 대한 구약성경의 증거가 가장 광범위하게 미치는 룻기에 있는 것 같다. 신 25:5-10에 의하면, 남편의 형제는 후사 없는 과부를 취하여서 씨를 영속시키고, 남자 후손과 결부되어 있는땅의 계승을 보증해야 했다. 여기에서 근친은 야밤이라고 불리어진다. 어근 가알은 사용되지 않는다.

룻의 상황에서는 두 가지 것들, 즉 밭과 수혼이 언급된다. 근친은 밭을 사는 것을 기꺼워했지만, 룻과 결혼하는 것은 기꺼워하지 않았다.

문제의 요지는 나오미가 가난하여 밭을 팔 수 밖에 없었을 때, 근친은 그녀를 위해 그 밭을 되사야 했다는 데 있다. 그는 후사 없는 형제의 과부를 위해서 이 일을 기꺼이 했다. 그가 룻과 결혼하여 그들의 기업을 지속시킬 자손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그는 거부하였으며 보아스가 개입하였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것, 즉 친족과 수혼은 구별되어야 한다. 고엘(구속자)이란 단어는 후자의 제도를 가리키지 않는다. 레게트(Leggett)는 룻기에 구속적이고 메시야적인 유형론의 주제가 들어있다고 보았다. "고엘(goel)로서의 보아스의 행동들에서 우리는 보아스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가 예시되어 있음을 보았다. 보아스가 구속의 권리를 소유하였으면서도 분명히 룻을 위하여 개입할 의무는 없었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다. 보아스가 이 가난한 과부들의 곤경을 보았을 때 그의 생애가 여호와와 여호와의 율법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었으므로 그들을 구원하러 왔던 것과 같이 메시야의 경우도 그의 생애가 하나님의 법에 의해 지배되고 또한 그가 가난한 자들과 억압 받는 자들을 공정하고 정당하게 대우하실 것이라는 사실이 예언되었다(시 72:2, 시 72:4, 시 72:12, 시 72:13, 사 11:4).

(b) 둘째로, 가알은 재산이나 여호와께 바쳐진 희생제물 아닌 짐승들을 무르는 것, 혹은 부정한 짐승들의 첫 소산을 무르는 것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레 27:11-33).

이 사상은 인간이 교환물로 그에 상응하는것을 여호와께 바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속전은 부정직한 교환을 피하기 위해 약간의 추가 몫이 제공되었다. 이런 경우에 무르는 자는 친족이 아니라 재산의 주인이었다.

(c) 셋째로, 가알은 살해당한 사람을 대신하여 "피의 보수자"(RSV '보복자' revenger)가 되는 가장 가까운 친족을 언급하는데 사용되며, 칼 분사 고엘로 나타난다.

고엘은 구속자이며, 이 구속자는 '피의 보수자'로 불리우는데, 그의 임무는 자신의 친척을 살해한 자를 처벌하는 것이다(신 19:6). 이 사상은 가까운 친족이 생명에는 생명으로 지불해야 한다는 것임에 틀림없다. 돈을 지불함으로서 집을 재매입하거나 노예를 속량할 수 있는 것처럼, 친족의 잃어버린 생명은 마땅히 살인자의 그에 상응하는 생명으로 지불되어야 한다. 친족은 피의 보수자이다. 이런 사형 제도는 피비린내 나는 숙원과 구별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고엘은 죄없는 사형 집행인이었으며 따라서 살해되어서는 안되었기 때문이다. 이 단어는 '보수자'라는 의미로 12회 나온다(민 35:12, 민 35:19, 민 35:21, 민 35:24, 민 35:25, 민 35:27, 신 19:6, 신 19:12, 수 20:3, 수 20:5, 수 20:9). (참조: R. L. Harris).

(d) 넷째로, 가알은 하나님께서 '구속자'로서 '구속하시는 행위'에 대해 사용되었다.

출 6:6에서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 내며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구속하여"라고 약속하신다(출 6:6, 참조: 시 77:15). 이스라엘은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주께서 그 구속하신 백성을 은혜로 인도하시되"(출 15:13). "하나님이 저희의 반석이시요 지존하신 하나님이 저희 구속자이심을 기억하였도다"(시 78:35).

이사야서에는 '구속자'라는 단어가 하나님을 지칭하여 13회 나오는데 모두 사 41- 63장에서 사용되었다.
가알은 하나님에 대해 9회 사용되었으며, 사 43:1에서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가알은 애굽으로부터의 구원(사 51:10, 사 63:9)과
바벨론의 포로생활로부터의 구원(사 48:20, 사 52:3, 사 52:9, 사 62:12)을 언급하는데 사용되었다.

이스라엘의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사 41:14)이며 '너희의 왕 이스라엘의 창조주'(사 43:14, 사 43:15)이며 '만군의 여호와'(사 44:6)이며 '야곱의 전능자'(사 49:26)이다. 그의 구원에 참예하는 자는 '구속 받은 자'이다(사 35:9).

시편에는 종종 영적인 구원이 육적인 구원과 병행되어 나온다. 예를 들면 시 69:18., "내 영혼에게 가까이 하사 구속하시며 내 원수를 인하여 나를 속량하소서". 시 103:2, 시 103:4.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윤택을 잊지 말찌어다...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이 그러하다(참조: EDBW).

유명한 구절, 욥 19:25에서 고엘이란 단어는 흠정역성경에서 '구속자' redeemer로 번역되며 어떤 이들은 이 단어가 속죄의 사역을 하러 오실 그리스도의 오심을 나타내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것은 히브리어 파다에 의해 더욱 특징적으로 표현될 것이다. 이제 욥 19:25에 나오는 이 단어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결국에는 욥을 죽음의 먼지에서 구속할 친구이자 친족으로서의 하나님의 사역과 더욱 정확하게 관련된다. 욥 19:26의 난해한 어구, "이 가죽...후에"는 다른 모음들과 함께 "내가 깨어난 후에"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NIV 각주와 욥 14:12-14을 참조하라. 욥 14:12-14에서 부활에 관한 욥의 질문은 하나님께서 결국에는 그를 돌아보시며 욥은 나무처럼 제 2의 성장을 할 것이라는 그의 소망에 의해 절정에 달하게 된다 - 욥 14:14의 할리파는 욥 14:7의 할랍에 대한 응답이다). 어쨌든 욥은 마침내 자기 자신의 눈으로 자기의 고엘이신 하나님을 볼 것으로 기대한다(참조: R. L. Harris).



구속(救贖)과 구원(救援)

구속(Redemption)

히브리어 – ‘파다’, ‘코페르’, ‘가알’,  명사= ‘게울라’.  헬라어 – λυτρο 어근(語群) ‘해방’ 이란 의미가 있고, 대가를 지불하고 속박 상태에서 풀려나는 것을 구속(救贖)이라 한다. 국어사전에는 구속이란 “기독교에서 에수가 십자가의 보혈(寶血)로 만민의 죄를 대신 씻어 구원한 일-대속(代贖)”으로 되어 있다.

1) 구약(Old Testament) – 히브리어 ‘파다’와 파생어들이 구속이란 의미로 가장 많이 사용되었는데, 이 단어들은 주로 율법에 따라 하나님께 속한 초태생의 사람이나 가축을 대속할 때 사용하였다(예,출13:13).  그러나 ‘파다’란 말이 간혹 상실된 생명을 다시 회복시킬 때 지불하는 ‘속죄금’ (보상금)이란 의미로도 사용되었다(출21:30; 삼상14:45; 참조-출30:12).

히브리어 ‘코페르’(몸값, 속전, 속죄금, 속죄) : 하나님께서 ‘파다’[몸값(배상금)을 치르고 되찾다. 속전하다, 구속하다, 건지다, 속량하다, 대속하다, 구원하다, 속하다]의 주체가 되실 때 출애굽 사건을 일반적으로 구속 사건이라 부른다(예, 신7:8’ 9:26; 삼하7:23; 시78:42). 이와 같은 경우에는 대가에 대한 지불보다는 하나님의 주관적인 구속 행위가 더 강조되고 있다.

히브리어 동사 ‘가알’과  명사 ‘게울라’는 자신을 종으로 팔아버린 곤궁한 친족을 구속해야 하는 의무나, 이미 팔아버린 친족의 땅을 다시 구입해야 하는 의무와 관련되어 있다(레25:25-26, 33, 47-49; 룻4;4, 6). 이와 같이 구속의 의무를 수행하는 자를 가리켜서 구속자(‘고엘’, 예, 룻3:12의 ‘기업 무를 자’라 불렀다) 구속자는 또한 친족의 부당한 죽음에 대해서 복수까지 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욥19:25)라는 욥의 고백은, 그에게 닥칠 부당한 죽음을 구속자가 보복해 줄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와 같은 친족의 구속 의무 개념을 확대시킨 것이 바로 애굽의 노에 상태에 있던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이끌어 내신 하나님의 구속 사건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서에서 자신이 구속자라고 말씀하셨는데(예, 사41:14, 47:4), 이 때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행하실 구원 사역을 이전에 있었던 출애굽 사건과 비교하면서 강조하였다. 여기에서 주의할 점은 위에서 언급한 히브리 단어들이 항상 ‘구속’이나 ‘속량’이란 의미로만 사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문맥에 따라 이 단어들의 의미가 변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2) 신약(New Testament) – 신약에서 구속이란 개념은 주로 헬라어 ‘뤼트로’ 어군(語群)으로 표현되었다.  명사 ‘뤼트론’(λυτρον… 몸값, 속전), ‘뤼트로시스’(λύτρωσις… 속전, 구속), ‘아폴뤼트로시스’(ὰπολύτρωσις… 몸값, 속전, 구속, 의무의 면제, 해방), ‘안틸뤼트론’(ὰντίλυτρον … 몸값, 속전), 동사 ‘뤼트로오’(λυτροω) 등.  그리스도의 죽음을 속전으로 이해한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代贖物)로 주려함이라”(사53:12) .


앞에서 언급된 헬라어 단어들이 구약의 구속 개념을 완전하게 전달해 준다고는 볼 수 없으나 설명하는데는 크게 도움이 된다. 일상 이러한 헤라어 단어들은 ‘보상’이란 의미를 지닌다.  노예들이 자유를 얻기 위하여, 또는 죄수들이 석방되기 위하여 제사의식 때 신에게 바치는 돈을 지칭하가도 했다. 아무튼 이스라엘의 구속 개념과 여러 면에서 유사했던 이 단어들은 그리스와 로마 사회에 여호와의 구속을 이해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바울 서신에서 ‘아폴뤼트로시스’(ὰπολύτρωσις)는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얻게 된 현세의 구속 (롬3:24; 엡1:7; 골1:14; 참조 고전 1:30), 장래에 얻게 될 종말론적 구속(엡1:14, 4:30) 모두를 지칭할 때 사용하였다.  또한 이 단어가 히브리서 11:35에서는 악형의 고통에서 벗어남을 가리키는 일상적인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헬라어 동사 ‘아고라조’(àγοράζω … 사다, 구입하다)는 시장에서 사용하던 말인데, 성경에 사용되고 있다. 이 말은 본래 헬라 사회에서 노예를 구입할 때 주로 사용하였다. 그런데 이와 같은 용례가 하나님의 구속을 이해할 수 있는 가교 역활을 해 주었다(고전6:20, 7:23; 벧후2:1; 계5:9, 14:3).

곧 노예를 구입하기 위해서는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하며, 구입한 노예는 그 주인이 바뀌게 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보혈이란 대가를 지불하여 하나님의 ‘의의 종’이 된 그리스도인들의 모습과 일맥 상통한다(롬5:9; 6:18-20). 후에 교부들에 의하여 속죄 교리가 발전하게 되자, 누구에게 속죄의 대가를 지불했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아고라조’(àγοράζω)의 강조형인 ‘엑사고라조’(ὲξαγοραζω)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율법의 저주나 속박으로부터의 구속을 나타낼 때 사용하였다(갈3:13, 4:5). 이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 전환점이 되었다.

‘구속자’ (속량하는 자 … ‘뤼트로테스’λυτρωτής)란 말이 신약에서 모세에게 사용되고 있는데(행7:35) 이는 모세뿐만 아니라 구약성경에 있는 여러 인물들이 구속사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