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드


2617. 헤세드(chêçêd)  חֶ֫סֶד

1. 욕구
2. 열심
3. 인자함

어원/ 2616에서 유래
관련 성경 / 인자(창 19:19, 민 14:18, 시 18:50), 은혜(창 20:13, 삼하 3:8, 렘 32:18), 인애(창 47:29, 신 7:9, 렘 2:2), 은총(창 32:10, 삼하9:1, 호 2:19), 성실(왕상 3:6), 긍휼(느 1:5, 시 85:10), 아름다움(사 40:6).
[동] 영화롭게 하다(잠 14:34), 선대하다(수 2:12, 삿 1:24, 룻 1:8), 은혜를 베풀다(룻 2:20), 인자하다(대상 16:34, 대하 7:3,시 59:10),
자비하다(대상 16:41, 대하 5:13), 선하다(대하 32:32, 느 13:14), 긍휼히 여기다(스 9:9, 시 59:17), 불쌍히 여기다(욥 6:14).
구약 성경 / 246회 사용




구약성경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사랑”이라는 뜻의 히브리어는 “헤세드”입니다.
“자비” “인자” “선대(善待)” “은총”이라고 번역합니다.
헬라어로는 “아가페”라고 하겠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이 “헤세드”의 사랑은 크게 세 가지 용례를 갖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시편 136:1)
둘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사랑(호세아 6:6)
셋째, 이웃을 향한 우리의 사랑(룻기 2:20, 사무엘하 9:1)

성경은 이 세 용례들을 각각 보여 주는데,
시편 136편 1절에서 26절까지의 경우에는 매절마다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인자”로 번역된 단어가 “헤세드”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인자(헤세드)가 얼마나 큰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편 52:8, 역대상 16:34, 역대하 5:13, 에스라 3:11, 느헤미야 9:17, 예레미야 33:11 등 곳곳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헤세드”로 표현합니다.

호세아 6장 6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헤세드”의 사랑을 기록합니다.
“나는 인애(헤세드)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 아는 것을 원하노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헤세드”의 사랑을 다시 우리에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헤세드의 사랑이기를 하나님은 원하신다는 뜻입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 성경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하는 “헤세드”의 사랑을 기록합니다.
“나오미가 자기 며느리에게 이르되 그가 여호와로부터 복 받기를 원하노라 그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헤세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룻 2:20).

“다윗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에게 은총(헤세드)을 베풀리라”(삼하 9:1).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은 자신들과 관계된 사람들에게 “헤세드”의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헤세드”의 대상이 누구이며, 방법이 무엇이든지 공통점은 “자기 희생”입니다.

다섯 살짜리 여동생이 오빠에게 물었습니다.
“오빠, 사랑이 뭐야?” 오빠가 대답했습니다.
“사랑이란 내 가방 속에 있는 초콜릿을 네가 매일 훔쳐 먹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초콜릿을 계속 같은 곳에 넣어 두는 거란다.”
그래도 동생이니까 모른 척하면서 계속 초콜릿을 넣어둘 수 있는 것이겠지요.
만약 생소한 사람이 초콜릿을 훔쳐 먹는데도 계속해서 넣어둘 수 있다면, 그게 더 진짜 사랑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증오는 쉽다. 하지만 사랑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증오가 쉽고 사랑에 용기가 필요한 이유는, 증오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그대로 놔두는 것이지만, 사랑은 그 감정을 억누르고 삭히는 자기 희생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다른 짝은 희생’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랑을 위한 희생의 끝은 어디까지일까요?

2011년 12월 24일자 중앙일보에 이런 내용의 기사가 실린 적이 있습니다.

아이다호 주에 사는 제니 레이크라는 여성이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았는데 뇌종양 3기였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그녀는 홀몸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와 남자친구 네이던 휘트먼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뇌종양 치료를 위해 항암치료를 받아야 할지, 아니면 뱃속의 아기를 살리기 위해 치료를 거부해야 할지였습니다.
만약 아기를 살리기 위해 항암치료를 거부한다면 그녀는 눈 앞에 다가온 죽음을 피할 길이 완전히 없어지게 되고, 항암 치료를 받을 경우에 뱃속의 아기는 당연히 유산해야 했습니다.

제니는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아홉 달 동안 몸속의 암과 사투를 벌인 끝에 건강한 아들 채드를 낳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해냈어. 내 할 일을 한 거야. 아기만 안전하면 난 괜찮아.” 제니는 채드를 낳은 지 12일 뒤에 숨을 거둡니다.
아들 채드는 자신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전혀 모른 채 현재 아이다호(Idaho) 주의 포카텔로에 있는 할아버지 집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이보다 덜하지 않습니다.
아니 그 이상입니다.

제니 레이크가 뱃속에 있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 죽음을 불사했던 희생의 사랑처럼, 이 글을 읽으시는 당신과 저를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이 바로 “희생의 사랑”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당신은 하나님께서 주신 헤세드의 사랑을 체험했습니까?
그렇다면, 당신도 그 헤세드의 사랑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까?
뿐만 아니라, 당신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그 사랑을 전달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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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드

헤세드란 `자비, 인애, 은혜를 입다`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입니다.
룻기는 이방인 모압여인 `룻`이 유다인으로 유입되는 과정의 내용을 기록한 책입니다.
룻은 나중에 예수님의 족보에도 그 이름이 기록되는 영광을 안은 여인입니다.

헤세드는 룻기에서 세번에 걸쳐 표기되어 있는데 룻이 행했다는 표기가 두번(룻1:8 죽은자에게 선대(헤세드)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룻3:10 너의 베푼 인애(헤세드)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보아스가 행했다는 표기가 한 번(룻2:20 그가 생존한 자와 사망한 자에게 은혜(헤세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있습니다.

즉 다른 이에게 자비와 인애를 베푸는 자(상대방의 말과 뜻을 귀히 여겨 존중해 주고 마음에 담는 것이 가장 큰 인애입니다.)에게 후일 하나님으로부터 진정한 은혜를 얻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룻`의 이름의 뜻은 `친구` 또는 `추가된 사람`입니다.
또 그와 결혼한 `보아스`는 `성전 기둥`의 이름을 가진 존재입니다.


룻은 이방여인으로서 예수의 계보에 들어올 수 없는 사람(우리 모두도 예전에는 룻과 같은 처지였다는 것을 기억합시다.)이었으나, 일차 시어미와 남편을 통하여 하나님을 발견합니다. 룻은 남편을 잃고 고향으로 돌아가지 아니하고, 나오미(`즐거움`이라는 뜻)의 권유로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주어 시어머니와 함께 먹고 삽니다.

그것은 보아스(보아스는 예수님과 같이 당시의 `중보자`의 역할을 하는 인물로 볼 수 있습니다.)를 통하여 내려지는 하나님의 말씀의 양식을 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나서 보아스에게 자신의 가계를 맡깁니다.
그것은 자신의 모든 것(육적인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가계로 들어가기를 소망하고 맡기는 룻의 결단입니다.

신약시대에 밭에 감추인 보화 하나를 발견하고,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아(자신이 귀히 여기고 매어있는 모든 개념을 내려놓고 새로이 발견한 진리를 적극적으로 취함을 뜻함.) 천국을 이룬 어떤 사람과 (마태복음13장) 같은 내용입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의 가계에 추가되어 인생에서 구원(육의 생명에서 영의 생명으로 옮김 받음)을 받는 귀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헤세드란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모양을 설명하는 단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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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 하나님 안에,
하나님-인간 사이,
인간-인간 사이를 순차적 관계의 확장으로 이해하고,
하나님-만물 사이의 관계를 기초로,
인간-만물, 만물-만물 사이의 관계를 실천적으로 적용합니다.
그중에서도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의 샬롬을 이해하는데 "헤세드"라는 단어가 적절합니다.

헤세드라는 히브리어는 제법 대중에게도 알려진 기독교 용어 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카페 이름으로도 몇 군데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 뜻은 보통 "인애, 인자, 자비" 같은 사랑을 뜻하거나 "충성, 진실" 같은 신실함으로 이해되는 것 같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헤세드는 개역개정 성경을 기준으로 보자면 "헤세드"는 "인자(하심), 은혜, 후대, 사랑, 은총, 인애, 선대, 후대, 자비,진실, 긍휼, 선함"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영어로는 steadfast love, faithfulness, loyalty, mercy, favor, goodness, kindness 라고 번역됨)
이 단어에 대해서는 아래에 번역한 글을 참고하면 헤세드 단어의 용례를 크게 6가지로 정리했습니다. 

1. 하나님의 성품으로서의 '헤세드'
2.하나님의 자비의 표현으로서의 '헤세드'
3. 시편에서의 '헤세드'
4. 하나님이 원하는 '헤세드'
5. 친절로서의 '헤세드'
6. 약속에서의 '헤세드'

1. 하나님의 성품으로서의 헤세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되, 일방적이고 보편적이기도 하지만, 막연하지 않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은 대상(이스라엘, 모세,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보살핌, 돌봄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2. 하나님의 자비의 표현으로서의 헤세드

죄에 대해 관용과 구원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내가 한 행동을 근거로 받는 사랑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만 기대할수 있는 은혜, 사랑을 의미합니다.

3. 시편에서의 헤세드

하나님의 헤세드에 대한 반응으로서 찬양의 기쁨, 소망을 담은 용기와 다짐 같은 인간의 반응을 보여줍니다.

4. 하나님이 원하는 헤세드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에게 베푼 헤세드가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되기를 기대하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마치 부모의 사랑, 선생님의 사랑을 받은 어린이들이 자라서 다른 사람에게 그 사랑을 흘려 보내는 것 같은 기대입니다.

5. 친절로서의 헤세드

사람들 사이에 통용되는 신뢰로서의 헤세드입니다.
요구하여 받아내고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베푸는 자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헤세드입니다.

6. 약속에서의 헤세드

헤세드라는 단어 하나로 기독교의 모든 것을 설명하거나 샬롬복음에서의 샬롬을 다 담아 대변하기에는 부족할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서두에서 말했듯이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의 관계, 하나님의 사람들끼리의 관계, 하나님의 사람들과 아직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기대되는 사랑과 섬김을 표현하기에는 적절한 단어로 여겨집니다. 

그렇기에 헤세드라는 단어는 하나님을 바라볼 때(기도할 때) 그리고 교우들이나 세상과 관계를 맺을 때(기도할 때) 중심 단어로 묵상하고 나누어 보면 하나님 나라의 샬롬을 맛볼수 있는 나침반이 될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구약에서 이 단어의 사용빈도를 살펴보면, 모세오경(20번), 선지서(27번), 시편(127번), 지혜서(13번), 역사서(58번)에 총 245번 등장합니다. 

히브리 단어 헤세드는 때때로 친절이나 자비의 뜻으로 사용됩니다. 또한 신실함이나 충성스러운 의미로 쓰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은 인자(steadfast love)로 번역합니다. 

1. 하나님의 성품으로서의 '헤세드'

헤세드는 하나님의 성품처럼 사용합니다.
하나님의 헤세드는 하나님의 성품을 묘사할때 필수적인 부분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나타나셨을때 하나님은 자신을 "인자(chesed)가 많은", "인자(chesed)를 천대까지 베푸는" 분으로 소개하셨습니다. 

출애굽기 34:6–7 (NKRV)
6.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7.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하나님의 헤세드는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그의 언약과 관련있습니다.
십계명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그를 사랑하고 순종하는 자에게 은혜(chesed)를 베푸는 분으로 묘사합니다. 

출애굽기 20:6 (NKRV)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이런 설명은 구약 전체에서 반복됩니다. 

느헤미야 1:5 (NKRV)
5.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다니엘 9:4 (NKRV) 
4.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이시여

예레미야 32:18 (NKRV) 
18. 주는 은혜를 천만인에게 베푸시며 아버지의 죄악을 그 후손의 품에 갚으시오니 크고 능력 있으신 하나님이시요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니이다

솔로몬은 하나님이 자신의 아버지 다윗에게 은혜(chesed)를 베푸셨다고 하고, 또한 하나님이 다윗에게 약속한 것을 지키는 것을 가리켜 은혜를 베푼다고 하며 세상에 그런 신이 없다고 합니다. 

열왕기상 3:6 (NKRV)
6. 솔로몬이 이르되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그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그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항상 주사 오늘과 같이 그의 자리에 앉을 아들을 그에게 주셨나이다

열왕기상 8:23–24 (NKRV)
23.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위로 하늘과 아래로 땅에 주와 같은 신이 없나이다 주께서는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행하는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나이다 
24.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하신 말씀을 지키사 주의 입으로 말씀하신 것을 손으로 이루심이 오늘과 같으니이다

 

2. 하나님의 자비의 표현으로서의 '헤세드'

하나님의 헤세드는 죄에 대해서 하나님이 베푸시는 자비와 불쌍히 여기는 용어로 사용됩니다.
사람들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할때, 모세는 하나님의인자(chesed)를 언급합니다.

민수기 14:18–19 (NKRV)
18.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허물을 사하시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시고 아버지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19. 구하옵나니 주의 인자의 광대하심을 따라 이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되 애굽에서부터 지금까지 이 백성을 사하신 것 같이 사하시옵소서

느헤미야서에서는 이스라엘이 그들의 죄들을 고백할때, 그들 역시 하나님이 인자(chesed)가 풍부하시기 때문에 패역한 세대를 버리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느헤미야 9:17 (NKRV) (그들이)
17. 거역하며 주께서 그들 가운데에서 행하신 기사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며 패역하여 스스로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종 되었던 땅으로 돌아가고자 하였나이다 그러나 주께서는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라 은혜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시며 더디 노하시며 인자가 풍부하시므로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셨나이다

에스라는 하나님이 포로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대신 불쌍히 여김(chesed)을 입었다고 합니다. 

에스라 9:9 (NKRV)
9. 우리가 비록 노예가 되었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그 종살이하는 중에 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바사 왕들 앞에서 우리가 불쌍히 여김을 입고 소생하여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게 하시며 그 무너진 것을 수리하게 하시며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우리에게 울타리를 주셨나이다

선지자들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 노하기를 더디함과 인애(chesed)를 인용하며 하나님께 돌아오도라고 권면했습니다. 

요엘 2:13 (NKRV)
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요나 4:2 (NKRV)
2.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3. 시편에서의 '헤세드'

'헤세드'는 시편에서 가장 두드러집니다.
시편 찬양은 헤세드에 집중하도록 요청 받습니다. 

시편 36:5 (NKRV)
5.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주의 진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

시편 59:17 (NKRV)
17. 나의 힘이시여 내가 주께 찬송하오리니 하나님은 나의 요새이시며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

시편 61:7 (NKRV)
7. 그가 영원히 하나님 앞에서 거주하리니 인자와 진리를 예비하사 그를 보호하소서

시편 89:1 (NKRV) 
1. 내가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노래하며 주의 성실하심을 내 입으로 대대에 알게 하리이다

"그 인자하심(chesed)이 영원함이로다" 구절은 종종 찬양의 후렴구로 반복됩니다. 

시편 118:1–4 (NKRV)
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 이제 이스라엘은 말하기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3. 이제 아론의 집은 말하기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4. 이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말하기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시편 136:1–26 (NKRV)
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
26.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애가의 시편에서 시편기자는 하나님께 "주의 사랑(chesed)"으로 구원해달라고 요청하거나 "인자하심(chesed)"을 근거로 자신을 기억하고 구원해달라고 합니다. 

시편 6:4 (NKRV) 
4.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시편 31:16 (NKRV)
16.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추시고 주의 사랑하심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시편 109:26 (NKRV)
26.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시며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구원하소서
시편 25:6–7 (NKRV)
6. 여호와여 주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부터 있었사오니 주여 이것들을 기억하옵소서 
7. 여호와여 내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주께서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으로 하옵소서

시편 69:13–15 (NKRV) 
13. 여호와여 나를 반기시는 때에 내가 주께 기도하오니 하나님이여 많은 인자와 구원의 진리로 내게 응답하소서 
14. 나를 수렁에서 건지사 빠지지 말게 하시고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와 깊은 물에서 건지소서
15. 큰 물이 나를 휩쓸거나 깊음이 나를 삼키지 못하게 하시며 웅덩이가 내 위에 덮쳐 그것의 입을 닫지 못하게 하소서

또한 하나님의 헤세드는 시편기자의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기초입니다. 

시편 130:7 (NKRV)
7.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

시편 143:8 (NKRV)
8.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

왕은 하나님의 인자함(chesed) 때문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할수 있습니다. 

시편 21:7 (NKRV)
7.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오니 지존하신 이의 인자함으로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시편 23편에서 시편기자는 하나님이 자신의 목자가 되시기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자신을 따를 것을 확신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립니다. 

시편 23:6 (NKRV)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4. 하나님이 원하는 '헤세드'

헤세드는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에게서 찾는 성품이기도 합니다. 호세아서에서 하나님은 희생 제사보다 더 원하는 것이 인애(chesed)입니다. 

호세아 6:6 (NKRV)
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스가랴 선지자는 백성들이 서로 인애(chesed)와 긍휼을 베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스가랴 7:9 (NKRV)
9.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서로 인애와 긍휼을 베풀며

미가 선지자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정의와 인자(chesed)와 겸손을 요구한다고 합니다. 

미가 6:8 (NKRV)
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시편기자는 하나님이 자신의 인자하심(chesed)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신다고 합니다. 

시편 147:11 (NKRV)
11.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잠언에서는 인자(chesed)를 진리와 함께 권면합니다.

잠언 3:1–4 (NKRV)
1.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2.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3.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4.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인자(chesed)를 가진 사람은 자기의 영혼을 이롭게 하고, 인자를 추구하는 사람은 생명과 공의와 영광을 얻는다고 합니다. 

잠언 11:17 (NKRV) 
17. 인자한 자는 자기의 영혼을 이롭게 하고 잔인한 자는 자기의 몸을 해롭게 하느니라

잠언 21:21 (NKRV)
21. 공의와 인자를 따라 구하는 자는 생명과 공의와 영광을 얻느니라

잠언31장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여성은 지혜를 말하고, 인애의 법을 말하는 사람입니다. 

잠언 31:26 (NKRV)
26. 입을 열어 지혜를 베풀며 그의 혀로 인애의 법을 말하며

 

5. 친절로서의 '헤세드'

사람들이 헤세드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용할때 그것은 친절을 의미합니다. 롯은 그를 방문한 천사들이 롯에게 소돔을 떠나라고 할때 그들의 인자(chesed)를 베푼 것으로 받아들였다. 

창세기 19:19 (NKRV)
19. 주의 종이 주께 은혜를 입었고 주께서 큰 인자를 내게 베푸사 내 생명을 구원하시오나 내가 도망하여 산에까지 갈 수 없나이다 두렵건대 재앙을 만나 죽을까 하나이다

요셉은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에게 자신의 사정을 바로에게 말해주는 것으로 자신을 생각하고 은혜(chesed)를 베풀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창세기 40:14 (NKRV)
14.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라합은 여리고에 찾아온 정탐꾼들에게 그녀가 그들에게 베푼 선대(chesed)를 자신의 가족에게 선대(chesed)함으로 약속하라고 요구합니다.

여호수아 2:12 (NKRV)
12.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도록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고 내게 증표를 내라

 

6. 약속에서의 '헤세드'

때때로 헤세드는 약속의 실천이라는 의미를 갖기도 합니다.
다윗은 요나단에게 서로 약속을 했으니 자신에게 인자(chesed)하게 행하라고 합니다. 

사무엘상 20:8 (NKRV)
8. 그런즉 바라건대 네 종에게 인자하게 행하라 네가 네 종에게 여호와 앞에서 너와 맹약하게 하였음이니라 그러나 내게 죄악이 있으면 네가 친히 나를 죽이라 나를 네 아버지에게로 데려갈 이유가 무엇이냐 하니라

이후에 다윗은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은총(chesed)를 베풉니다.

사무엘하 9:7 (NKRV)
7.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할아버지 사울의 모든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지니라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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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고 크도다'
오래 전에 많이 불렀던 복음송의 가사 일부 입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이라고 할 때, 인자라는 단어가 히브리어 헤세드 (Hessed)입니다. 
이 단어는 어쩌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꼭 알아야 할 히브리어입니다.
구약성경에서 헤세드는 문맥에 따라서, 인자 사랑, 긍휼, 자비, 선함 등등으로 번역됩니다. 
그러나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헤세드인자라고 쓰일 때에, 헤세드는 언약백성인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확고부동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어 선택하고 세우신 하나님의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고, 끝까지 신실하게 보호하고 사랑하고 지키신다는 뜻입니다. 이 헤세드의 사랑이,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 공로없는 죄인들을 이처럼 사랑하시어, 우리 죄를 대신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시고,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멸망치 않고 구원을 주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헤세드의 사랑을 믿고 의지할 때, 남녀노소 빈부귀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아무 차별없이, 누구든 언제나 어떤 환란속에서도 구원을 얻게 됩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그간 열심히 예수님을 믿고, 따르며 살아왔는데, 인생에 큰 풍파를 만난 것입니다.
어떤 분들에게, 코로나는, 미풍일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정말 갑자기 불어닥친 광풍일 수 있는 환란입니다.

성경을 보면, 놀랍게도, 우리는 거의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비슷한 일들이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기껏 가나안 땅으로 갔는데, 그곳에서 엄청난 기근을 만나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할 수 없이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내 사래를 애굽왕 바로에게 빼앗기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노예 상인에게 팔려, 애굽에 내려갑니다. 
형들이 요셉을 잡아 구덩이에 가두었을 때, 요셉은 울면서 살려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애굽사람 보디발의 집에 팔려가고 그곳에서도 강간범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지하 깊은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 40년, 그 이후, 살인범으로 도망자 신세가 되어, 광야에서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양치는 목자로 약 40년의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그러나 저들은 모두, 하나님의 헤세드 사랑을 믿고 의지하여, 그 모든 환란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기근이 들고 아내를 빼앗기고, 노예로 끌려가고, 광야에서 방황해도,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헤세드의 사랑으로 지켜주시고 결국 구원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모두 그 믿음대로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라를 다시 찾았고,
요셉은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으며,
모세는 출애굽의 영웅으로 쓰임받았습니다. 

내 자신의 공로와 선행을 의지하면 우리는 자신이 없습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볼 때, 어느 누구도, 우리 자신의 공로나 선행으로 하나님께 복받고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헤세드 사랑, 십자가 언약에 기초한 사랑을 의지하면, 믿는 자들은 누구나 하나님께 구원의 은총을 입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너희가 구원을 받았다”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들을 향하신 주님의 헤세드 사랑은 크고 크며, 영원 영원하시기에, 늘 십자가의 언약적 사랑, 헤세드를 의지하여, 믿음으로 오늘 코로나로 인해 당하는 어려움과 환란을 넉넉히 이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