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인가? 안식일인가? 속에 담겨 있는 종말 계시
이 안식일에 관한 제 4 계명은 10 계명중에서 3분의 1 이상 기록이 되어 가장 많은 설명이 부언되어 있는 계명이 됩니다.
귀중하기 짝이 없는 성경에서 그 기록된 분량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있다는 것이지요
출애굽기 193자( 총 579자 ),
신명기에서는 254자( 총 667자 )의 수가 됩니다
창세기 2장의 재료 창조 후에는 그 안식에 대한 말씀이 없다는 것에 주목해야 됩니다.
아담과 여자는 이 안식을 위한 마지막 시험 단계에서 사단에게 지게 되어서 안식에 들어 가지 못하고 오히려 에덴 안에 있던 동산에서 쫓겨나게 된 것이며, 이는 하나님께서도 쉬지를 못하고 인류의 회복을 위해 다시 일을 하시게 되었다는 사실을 아담의 범죄를 통해서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째 아담이 범죄를 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고 숨었을 때에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며 부르실 때에 동시에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을 그 회복을 위해 함께 부르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이는 또한
시내산에서 십계명 속에 안식일에 대한 제 4 계명을 받기 전에 이미 부분적일지라도 안식일 규정이 지켜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수가 있게 해주는 증거의 기록이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안식이 깨진 것 뿐이지 안식일은 부분적이나마 그대로 지켜지고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2:3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날에 안식 하셨음이더라.
여기서 일곱째날은 성경에 기록 된 첫 안식일이며 이때에 이미 안식일이 제정된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기 전까지 이 안식일이 지켜진 증거들이 아래와 같습니다.
보통 동일한 일을 다음 7일만에 다시 한다는 것은 그 7일이 한 주기가 된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 노아가 방주를 완성한 후 홍수 계시를 받고 대홍수를 7일간 기다렸으며
- 방주 안에서 7일 주기로 비둘기를 3번 내보냈고
- 야곱은 하란의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레아를 얻은 후 7일 후에 또 라헬을 얻었으며 위해서 다시 7년동안 라반을 위해 봉사하게 됩니다. - 야곱의 장례 행렬이 요단 건너편에서 7일간 애곡을 하였습니다.
- 십계명 받기전 출애굽 후 7일간 무교절을 지켰습니다.
- 신광야에서 만나가 내리기 시작했는데 7일 주기로 내렸고, 7일 째 안식일을 위해 여섯째 날에 두배가 내렸습니다.
- 전세계의 달력이 7일을 한 주로 지내게 된 것도 안식일 규례의 흔적이 됩니다
그래서 제 4 계명을 주실 때에,
출애굽기 20: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기억하여'라는 의미는 이미 존재 하고 있었던 것을 다시 기억해야 하는 것으로 말씀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거룩히 지키라”는 의미는 안식일은 성별된 날이 되는 것으로서,부정한 다른 날들과는 구별이 되어야만 하는 날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일 날은 다른 날과 구별하여 따로 떼어 놓으신 날이요, 여러 날들 중에서 으뜸이 되는 날이며 귀중한 날이요, 영광의 날이 된다.
원문대로 번역하면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기 위하여, 다른 날과 구별하기 위하여 안식일을 기억하라"가 됩니다.
그럼 어떤 의미가 으뜸이 되는 날이며, 귀중한 날이 되고, 다른 날들과 구별하여 떼어 놓은 영광의 날이 되는 것일까요?
이는 모세가 모압평지에서 안식일에 대하여 광야에서 태어난 2번째 세대에게 이와같이 말을 합니다.
신명기 5:15
너는 記憶(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强(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命(명)하여 安息日(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430년간 종살이 했던 데서 이끌어 내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서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신 것이고 그렇게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면 절대로 자손 만대에 종이나 노예가 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거룩한 땅에서 주인이 되며 세계의 머리가 되는 복을 받게 된다고 박목사님은 풀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신 28:1-14 )
이렇게 다른 계명들과 안식일을 잘 지키면 그러한 복을 받게 될 것에 대한 약속이,
신명기 28:1-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命(명)하는 그 모든 命令(명령)을 지켜 行(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世界(세계) 모든 民族(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順從(순종)하면 이 모든 福(복)이 네게 臨(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그래서 이 안식일 계명은 결론적으로 보면 출애굽, 곧 이 지구를 벗어나기 위해 변화하는 그 날의 일과 직결이 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증거로 안식일 법에서 파생되어지는 세부 율법에도 보면 안식년과 희년등을 통해서 빚을 면제 해주고,땅을 쉬게하며, 종들을 놓아주는 자유가 선포되어지는 법이 이 안식일 법에서 파생되었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신명기를 통해서 이 안식일에 대하여 재강론을 할때에 출애굽기는 유월절과 이어지는 칠칠절 그리고 초막절의 절기를 함께 이 안식일을 근거로 하며 제시하고 있다.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을 때에는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이유를 ‘하나님의 창조 사역'과 관련하여 설명을 하였고, 신명기에서는 ‘출애굽 역사'와 관련하여 설명하고 있다.
신명기에서 모세가 이 십계명에 대해서 재강론을 할 때가 바로 죽기 직전이 되겠는데요 그러므로 십계명을 시내산에서 처음 받을 때는 출애굽 원년이 되므로 거의 4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출애굽 1 세대는 하나님을 원망한 죄 때문에 세렛시내를 건너기 전 ‘이예 아바림’에서 다 죽고 이후 광야에서 태어난 2 세대들, 곧 출애굽 과정의 하나님의 역사를 보지도 못한 자들에게 다시 이 안식일에 대해서 풀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기에서의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섭리에서 보는 결론적 안식일 개념( 구약 )이라 한다면 신명기에서는 그 안식일에 무엇인가가 준비되어지므로 이 안식일을 잘 지켜서 준비가 철저하고 완전히 예비되면 종에서 벗어나게 되고 결국 거룩한 땅에 들어가므로 창조 섭리의 안식일에 다다를 수 있다는 과정적 개념( 신약 )으로 설명이 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도 출애굽 직후에 받은 안식일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창조 섭리의 개념으로만 이해를 하고 있다가 40년간 하나님과 동행을 하면서 그 안식일에 대한 개념을 확실히 깨닫고 두번째 강론인 신명기에서는 좀더 구체적으로 이스라엘에게 설명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이 초림 때에 오셔서 산상보훈으로 이 십계명을 다시 풀어주시는 장면의 계시와도 같은 것입니다
애굽은 오늘날 세상을 가리키고 있고 우리는 그 세상의 종 노릇을 하고 있는 것과 같은 데 안식일에 선포되는 말씀( 예수 )을 통해서 우리가 종의 입장에서 벗어나며 변화를 받는 단계에 이르면 거룩한 땅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 처음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주시면서 하시는 말씀도 신명기에 기록된 말씀의 뜻과 동일하게 먼저 선포하고 계셨던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출애굽기 20:1-2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引導(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특별히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으로 부터 우리를 이끌어 내신 것을 모든 십계명과 연결시키시며 강조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만일 安息日(안식일)에 네 발을 禁(금)하여 내 聖日(성일)에 오락을 行(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聖日(성일)을 尊貴(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行(행)치 아니하며 네 娛樂(오락)을 求(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業(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
이를 다시 중간 계시처럼 받쳐 주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안식일( 주일 )을 마음을 다하여 잘 지키면,
1,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 가장 높은 곳에서 선포되는 아버지 말씀으로 이루어지는 궁극적인 변화 구원을 통해 올라 가는 것을 예표하고 있고
2,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 산자요 장자로서 변화로 또 다른 멜기세덱의 반차로 들어가는 횃불언약 성취자들을 예표하는 것이니 이 둘을 합하여 보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것( 시내산 언약 )과 변화를 받는 일( 횃불 언약 )이 아주 직접적인 관계가 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곧 시내산 언약은 과정으로서 횃불 언약을 성취하기 위해 횃불 언약에 예속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하나님은,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고 하시어 안식일을 잘 지키면 이러한 변화의 축복을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게 해 주신다는 하나님의 단호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안식일은 심판과 동시에 우리를 변화로 이끌어 올리시는 거룩한 “주의 날”과 직결이 되는 구별 된 영광( 빛의 하나님 형상 )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다른 표현으로 심판 하러 오시는 날인 변화를 받는 ‘주의 날’이 안식일이 된다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 개념이 안식일의 예표속에 숨겨있는 것을 모세도 깨닫고 알고 신명기에서 구체적으로 차이나게 설명을 하고 있었던 것이고 박목사님께서는 이를 우리가 주목하고 깨달아야 할 것으로 이끌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 ‘주의 날’이 토요일이 됩니까, 일요일이 됩니까 하는 질문과도 같습니다.
주일에 드려야 하는 예배일에 대해 웨스트 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소요리문답에 나오는 안식일에 대한 기록을 먼저 정답으로 말씀하시며 예배일에 대한 모든 뜻을 대신하고 계십니다,
“세상 시작으로 부터 그리스도가 부활하시기까지는 하나님께서 매주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정하셨습니다 그후로 부터 세상 끝날에 이르기 까지는 매주 첫째날을 안식일로 정하셨습니다 이날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입니다” 한 기록을 인용 하셨구요, ( 창 2:2-3, 출 16:23, 행 20:27, 고전 16:1-2 )
또 다시 바울의 말을 인용하셨는데요
골로새서 2:16-17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안식일도 장래 일의 그림자에 속한 것이라고 속뜻을 알게하고 계셨습니다
가장 가까운 장래의 일은 모든 율법과 절기와 계명들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과 그의 오심을 알아 보고 그 예수님 안에서 마침이 되며 이어 예수님을 통해서 새로운 안식에 들어 가야 하는 것이 바로 그 장래의 일의 속뜻이었습니다( 요 5:45-47, 갈 3:24, 마 12:8, 막 2:27-28 )
계시대로, 예수님은 마침내 오셨지만 안식일의 주인이 되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겉으로만 외식하는 유대인들에게 안식일에 대한 참된 의미와 정신을 설파하시며 영적 각성을 이끌어 주고 있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막 2:27 )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라 말씀하셨고 안식일에 자기 소나 나귀를 마굿간에서 풀어 내고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는 것처럼( 눅 13:15 ), 또 구덩이에 빠진 가축을 구해내는 것처럼( 마 12:11, 눅 14:5 ) 질병에 걸린 사람들을 고쳐 줌으로써 사단의 매임에서 풀어 주는 것( 눅 13:16 )이 참된 안식을 주는 것이요 선을 행하는 일이며 생명을 구하는 일이 된다고 안식일의 참뜻을 알게 하여도 그들은 굳은 이마요 곧은 목이 되고만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결정적으로,
마 12:6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聖殿(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해도 못알아 듣고
급기야,
8절 “人子(인자)는 安息日(안식일)의 主人(주인)이니라 하시니라”하시니 이제는 신성모독으로 죽이려고 달려드는 것이었습니다
곧 안식일의 참 뜻은 질병과 같은 모든 죄악의 저주로 사람들을 괴롭히는 사단의 매임으로 부터 자유케하고 해방시켜 주는 것( 정결 사역 )이요 그렇게 살려 주는 것( 말씀의 변화 구원사역 )이 참 뜻이 되며 자신은 그 영혼의 구원을 위해 사단의 모든 일을 멸하려고 하늘에서 내려 온 하나님이라 하여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유대인들이었던 것입니다
출애굽의 참 뜻이 안식일의 참 뜻이 되며 예수님 자신은 이 참된 출애굽을 위해 우주 하나님이 보내신 말씀 하나님이신것을 유대인들은 깨닫지를 못했다고 박목사님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결국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사단의 앞잡이가 되어 안식일의 주인을 오히려 십자가에서 죽이게 되어 자기네 스스로도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고 선민 지위와 자격을 완전히 박탈 당하는 우매한 일이 되었고 예수님도 뜻을 온전히 이룰 수는 없었지만 그러나 예수님은 이를 통해서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우리를 해방을 시키시며 부활을 하시어 출애굽의 기틀을 먼저 마련해 놓으시는 구속의 날이 되게 하십니다
그렇게
부활하신 그 날이 출애굽으로 새로운 안식에 들어가는 새 안식일의 시작이 되는 주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구약의 안식후 첫날이 되는 것입니다
이날이 주일이며 참된 예배일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박목사님께서 말씀하시는 참예배일이요 주일이 되는 것입니다
‘안식후 첫 날’이 주의 날이며 주일이 되는 것입니다,
막 16:9 ) “예수께서 安息(안식) 後(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後(후) 前(전)에 일곱 鬼神(귀신)을 쫓아 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요 20:19 ) “이날 곧 安息(안식) 後(후) 첫날 저녁때에 弟子(제자)들이 유대人(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門(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平康(평강)이 있을찌어다” 의 기록처럼,
예수님이 부활하심을 보이심으로 새 날을 선포하고 계신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죄 없는 새 세계를 창조하신 것이 되며,
부활하신 안식 후 첫 날은 그 새 세계에 들어가는 첫 날로 정하시고 그 부활체를 보이기 시작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아버지 말씀을 그 주일에 선포하심으로 변화 구원을 완성하시는 것입니다
이후로 부터 안식후 첫날은 주의 날, 주일로 불리게 됩니다
특별히 계시록을 기록할 수 있게 되기 까지 하나님은 사도 요한에게 구속사의 모든 것을 보여 주셨는데 이를 본 사도 요한은 결론적으로 이 안식일에 대하여
계 1:10 )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라는 기록으로 계시록을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주의 날’이라고 확정하며 글을 시작하고 있는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최후 구속의 날, 곧 변화 영생이 주어지는 날이 주의 날에 일어나고 이루어지는 모든 것을 보고
‘주의 날'이라고 명확하게 선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거듭 말씀을 드린다면,
안식후 첫날 곧 주일에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구약의 안식일이 출애굽의 표면적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주어진 날이었다면 이제 주의 날인 주일은 이면적 죄와 사단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부활의 날이 되어 완전한 해방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참 안식의 시작이 되는 그 날의 그림자가 주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를 새사람 만들어 주시는 ‘주일'을 통해서 이제 신약시대 이후의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새로운 창조와 새로운 구속을 기념하기 위하여 주일을 지켜야 합니다”라고 박목사님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 고후 5:17, 엡 1:17, 4:22-24, 히 4:8-9 )
지금도 토요일을 안식일이다하고 예배일로 드린다면 성경과 위배가 된다는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십계명중,
제 1계명은 ‘예배의 대상'으로서 하나님만 섬길 것을 명령하였고,
제 2 계명은 ‘예배의 방법'으로서 우상이나 다른 어떤 형상도 만들거나 섬기는 것을 금하였고,
제 3 계명은 ‘예배의 정신'으로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고 거룩하게 불러 높일 것을 명령하였습니다
그리고 제 4 계명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시간, 날'을 말씀하시며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지정된 예배의 날을 특별히 구별하고 계셨던 만큼 오늘날 모든 교회에서 예배가 드려지는 날은 주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일은 그렇게 우리를 새로운 창조와 구속의 세계로 이끄시는 날, 곧 또 다른 출애굽 날의 그림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곧 변화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눅 9:31 ) “( 모세와 엘리야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 헬,Exodus= 출애굽 )하실 것을 말씀할쌔” 의 기록처럼
마지막 때에는 변화로 출애굽( 별세=세상과의 이별 ) 곧 지구를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 날이 바로 주일중 어느 한 날이 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날을 알 수 있는 한 단서가 됩니다 )
이렇게 구별된 날을 아무 날 정도로 생각하고 뜻없이 드려도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괜찮게 생각을 하고 받으시겠습니까
그래서 주일은 주의 크고 두려운 그 날( 권능의 날, 변화 승리의 날, 진노의 날 )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토록 크고 두려운 날이 되는 것은 주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 날이 주어져도 예비하지 않고 뜻에 불순종했기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일의 뜻을 알고 예비한 자들에게는 변화 영생의 승리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욜 2:31 )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말씀이 희미해 지고, 예배가 변질 되고 ) 달이 핏빛( =교회들의 타락, 말씀교회가 받는 핍박 ) 같이 변하려니와”
말 4:5 )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 사도 요한, 계 10:11 )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롬 2:5 )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震怒(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義(의)로우신 判斷(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震怒(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계 6:17 ) “그들의 震怒(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의 증거들처럼
주일을 지키지않거나, 변개시키거나 또 아버지 말씀과 상관없이 드리는 모든 예배는 심판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며,
결국,
벧후 3:10 )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 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의 기록이 응하게 되는 심판이 주어지게 되는데요
이 심판은 이미 안식일을 범하게 되는 자들이 받는 형벌을 통해서 구약 때에 예표로 보여주고 있었다고 박목사님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먼저, 안식일 계명을 어기는 자는 가장 무서운 사형이라는 극형으로 처벌 하도록 규정하셨습니다
출 31:14 에서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어기는 자는 안식일을 더럽히는 자라는 특이한 표현을 쓰셨는데요,
더럽히다는 (히) 할랄의 강조형으로서 ( 신성한것, 거룩한 것 )을 훼손시키다, (신성을 ) 모독하다는 뜻으로 그 말 그 뜻대로 안식일을 어기는 것은 신성모독죄가 적용이 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치 안식일이 가진 거룩이 하나님 자신의 거룩과 비견될 정도로 하나님이 안식일을 중요시 한다는 것입니다 ( 그렇게 거룩하고 경건한 자들만 안식일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히 4:1 )
예레미야 때에 그를 통해서 하나님은 이 안식일을 범하면 그 성문에 불을 놓아 예루살렘 궁전을 꺼지지 않는 불로 태운다고 경고 하셨습니다( 렘 17:19-27 )
이는 베드로의 계시( 벧후 3:10 )와 같은 것입니다
그 예로 남 유다가 안식일을 범하는 죄를 그치지 않자 결국 하나님은 BC 586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과 그의 시위 대장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전과 왕궁을 불 사르고 모든 귀인들을 사로잡아 가게 하고 그들의 집까지 몽땅 불로 태웠습니다( 왕하 25:8-9, 대하 36:19,
렘 52:12-13 )
아버지 박목사님께서 드리는 권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일을 잘 지키므로 영원한 안식 세계인 천국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아직 주일은 주님께서 재림하심으로 주어질 참안식의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음을 알려 주고 있는 것입니다 ( 히 4:4-9 )
오늘날 성도들이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창조와 새로운 구속에 감사 감격하여 모든 날을 주의 날로 지키며 주의 일을 행할 때 마침내 남아 있는 안식에 들어가는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될 것입니다” 하셨습니다
모든 날을 주의 날로 지키시라는 권면이신데요
구약의 안식일은 6일 동안의 모든 일을 마치고 그 날에 완전한 안식을 취하는 창조 사역적 안식일이라 한다면
신약에서의 주일은 그 주의 첫째날이 주일이 되어 시작하는 날이 되기 때문에 나머지 날들도 주일처럼 말씀으로 우리 안에 다 채울 때에 하나님의 형상은 완성되고 안식에 들어갈 수 있는 회복 완성이 전제 되어 있는 날이 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가나 혼인 잔치 때에 6 항아리( 창조의 6 일을 상징 )를 물로 아구까지 가득 채웠을 때에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것처럼 그 6 일이 모두 다 밤이 없는 오늘이 될 때에 우리도 변화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곧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한 빛으로 완성시키면 당연히 어둠이 없고 밤이 오지않는 항상 정오의 신앙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마지막 주의 날을 의미하는 그날과 그 때는 아버지 밖에 모른다고 했습니다
마 24:36 )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의 기록이 되겠는데요
오늘날 이 모든 것을 밝혀내시고 드러내시고 선포하고 계신 박목사님이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을
이 기록으로도 증명하기에 아직도 부족한가요
그럼 여기서,
단 9:27 )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의 본문에 대한 재해석이 당연히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박목사님의 존재와 아버지로 사역하셔야 된다는 성경속의 진리를 놓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종말 계시로서 가장 중요한 계시중의 하나인 단 9:27 에 대한 말씀이 됩니다
크게 4 부분으로 나눌 수가 있겠습니다
1,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의 뜻은,
‘그’는 아버지( 요 8:24-27, 박윤식 목사님 )를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요 8:24 )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 27절, 아버지 )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한 기록이 정확하게 예수님 핏속의 말씀과 하나가 되신 오늘날의 박목사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한 이레 동안’이라 하는 것은 박목사님께서 아버지 말씀 운동을 하시는 전체 기간( 변화 전과 후를 모두 포함 )을 가리키고 있는 것인데 이를 다시 나누어서 변화( 소천 )전의 시기를 ‘전 3년 반’으로 부르고 나머지 변화 이후의 시간들은 ‘후 3년 반’이라고 부르면 되겠습니다
지금은 바로 이 후 3년 반의 시기에 속하게 됩니다
‘언약’이라 하는 것은 성만찬 때( 눅 22:20 )에 말씀하셨던 약속으로서 핏속에 감추어진 말씀이 다시 나타나 선포되어 지며 우리들 심령에 새겨져야 하는 새언약( 렘 31:33, 히 8:10 )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곧 박목사님이 선포하시는 아버지 말씀을 우리들 심령에 새기는 것이 새언약이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아담의 살리는 영의 역사가 새언약이 된다는 것입니다
2,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후 삼년 반의 시기와 같은 오늘날의 상황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십자가만 붙들고 있는 교회들에 대해 아버지의 권면과 같은 것입니다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들이 폐해져야 한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고전 13:10 )
올바른 예배대상( 아버지 ), 예배 방법( 예를 들면 방언도 그쳐야 됩니다, 십자가도 우상이 됩니다 ), 예배 정신( 아버지 말씀 )이 담긴 예배를 정확한 예배일에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지막 때에 아버지가 인정하시고 흠향하시는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3,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계 17:17 ) “이는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그들에게 주사 한 뜻을 이루게 하시고 그들의 나라를 그 짐승에게 주게 하시되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기까지 하심이라”의 기록이 응하게 되는 것으로서,
이는 박목사님 변화하신 이후의 ‘후 3년 반’ 동안에 일어나는 오늘날 사건이 되겠는데요
곧 용( 사단 )과 짐승( 일루미나티 )과 거짓 선지자( 프리 메이슨 )들이 교회들을 타락시키고, 세상법을 통해 교회의 권위나 전도등 교회 활동을 제한하고 WCC같은 종교다원주의로 미혹시키며 현재 많은 교회들이 동성애를 인정하는 있는 배후에도 이들의 책략이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후 삼년 반’의 기간에는 말씀 기근 시대가 됩니다 그리고 예배를 드리는 것도 참예배가 아닌 변질된 예배의 형태를 띄게 되고 참예배의 순수성과 본질을 거의 잃어버린 예배가 참예배처럼 바뀌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찾아 갈 만한 예배가 없다는 것입니다
첫째 아버지 말씀을 배우고 선포하고 아버지를 예배해야 하는 때에 아직도 십자가만 붙잡고 있으니 사단이 위의 글처럼 하나님으로 부터 권세를 받고 마음껏 교회를 유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의 할 것은 마치 적 그리스도 군대가 총들고 칼을 들고 박해( 부분적으로는 이일도 현재 공산국가들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는 것이 아니라 미혹과 유혹으로 본질인 말씀과 동떨어진 교회들이 되게 하여 타락을 시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 날 곧 주의 날까지 가다가 도둑같이 그 날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살전 5:1-9 )
그러나 빛의 자녀들과 낮의 자녀들에게는 그 날들을 믿음으로 알게 하시기 때문에 도둑같이 임하는 것이 아니라 준비하고 예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변화를 받는 것입니다
4,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이는 전쟁과 지진등 계시된 재앙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내시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번 말씀을 드렸지만 박목사님께서는 3차 세계대전의 핵전쟁과 지진과 화산 폭발등의 자연 재앙들도 한꺼번에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무서운 환난의 시기가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이 단 9:27 에 대해 말씀을 드리는 것은 현재 지금의 때를 알려 드리기 위함이고 이는 앞으로 몇번의 주일을 지나면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을 맞게 될 것의 경종을 위해 기록을 한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다니엘의 모든 계시가 다 이루어졌고 오직 이 마지막 한 이레의 계시만 남아있습니다
이 한 이레의 계시도 시기적으로 보면 거의 다 끝이나고 마지막 끝자락에 우리는 서있는 것입니다
곧 지금이 성도의 권세가 깨어지는 때가 된다는 것입니다( 단 12:7 )
또, 인자의 임함은 노아의 때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 마 24:37 )
노아의 때는 방주를 짓는 기간과 완성이 되면서 하나님이 홍수로 심판하시는 당일, 이렇게 두가지로 나눌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방주를 짓는 기간은 아버지 말씀이 선포되고 배우며 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이루는 기간을 말하고 있는 것이며 그렇게 아버지 말씀을 통해서 또 다른 멜기세덱인 하나님들이 만들어져 아버지가 원하는 만큼의 숫자가 차게되면 바로 그 날이 임하게 되는 것인데요
이제 그 날이 주어졌기에 제가 이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여러분들이 알든 모르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자들의 숫자를 이미 가지고 계시다는 뜻도 되는 것입니다
사실 그 날은 성경안에 이미 몇가지 조각처럼 나누어지고 깊숙이 감추어져 있기에 성경을 온전히 깨닫고 그 조각들을 다 맞추기 전에는 어느 누구도 알 수가 없도록 장치가 되어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온전히 풀어 주러 오시는 아버지만 아신다고 하였던 것입니다
첫째, 종말에 대한 날짜를 알수 있도록 기준점으로 세우신 것이 바로 무화과 나무의 비유가 됩니다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을 선포했습니다 ( 지금으로 부터 71년 전이 됩니다 )
이때 많은 교회들도 혹시나 하며 재림 예수를 기다린 것으로 압니다 아닌게 아니라 이때부터 재림예수라는 자들이 우후죽순처럼 많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그들이 모두 가짜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점차 열기는 사라지고 오시리라 믿던 기대마저 점점 수그러지고 희미해져서 지금은 아예 우리 세대에는 오시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진 신학자나 목사님들이 많은 것을 보게됩니다
그러다가 이제는 그 날짜 계시마저 우스운 것으로 여기게 된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성경이 틀린것이 되고 오류가 되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것이 노아의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70년간 방주를 지으니 처음 1, 2년 혹 10년 까지는 노아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사람들 조차 그 이후부터는 노아를 정신병자 정도로 취급을 했을테니까 말이죠 그래서 그 홍수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노아와 그의 식구 7을 더해 겨우 8명 밖에는 되지를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박윤식목사님을 1960년대 초반 지리산에서 말씀과 하나가 되게 하시고 1964년도 부터 아버지 말씀을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 하나님, 박목사님께서 우리들 세상에 나타나신 것을 하나님께서 그 무화과 날짜 계시와 맞물려서 알게 하고 계셨는데요 바로 1967년도에 일어난 제 3차 중동 전쟁( 6일 안식일 전쟁 )을 통해서 그 전쟁에서 사람의 상식과 방법으로는 설명할 수도 없는 방법으로 하나님이 전쟁에 직접 개입하신 흔적을 남기시며 이스라엘을 승리로 이끄셨는데요
이 전쟁의 시기와 전쟁의 내용 그리고 당시 이스라엘의 국방장관이었던 모세 다얀 장군의 간증을 들어보면 이전쟁을 안식일 전에 끝을 내 달라는 기도를 했었기에 6일 만에 끝나는 전쟁이 된 것 같다고 했는데요 바로 안식일의 개념이 출애굽이 되는 것 아닙니까
무화과 나무 비유의 날짜 계시와 3차 중동 전쟁을 통해서 하나님의 시간표는 정확하게 종말 안식을 향해 달려 가고 있음을 알리시며 박윤식목사님이 누구이신지도 알게 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박목사님을 통해서 변화로 출애굽을 하여 영원한 안식이 주어질 것을 알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지금이 그 안식에 들어가기 직전이라는 것입니다
박목사님께서는 계 8:1 의 말씀을 빌어서 지금은 그 날이 오기 바로 30분 전이 된다고 변화전에도 늘 말씀을 하시며 이렇게 오는 날들이 다 같은 날이 아니다 하시고 마 24장 “하나님의 시간표는 정확하다고 말씀을 하시며 깨어! 예비하고 준비하라”는 말씀을 노래처럼 하셨습니다( 마 24:42,
44 ),
또 그 날에 들어가는 자들은 이긴자들이 된다고 사도요한은 계시록 소아시아 7 교회 모형을 통해서 구구절절이 말하고 있습니다
계시록 일곱 교회의 비유는 너무도 잘 알고 계시니,
마찬가지로 증거하고 있는 시 110:3-4 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시 110:3 )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 이긴자들, 요일 2:14 )이 ( 변화로 )주께 나오는도다” 하셨고
이어 4절에서 이 청년들이 누구인지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4절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永遠(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하여 그 청년들이 멜기세데급의 하나님의 아들들인 새벽별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이긴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숫자를 부여하고 계셨는데요 바로 17수가 됩니다
또 그 17수를 가진자들은 돌아오는자들이 된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하여 예레미야가 고향 아나돗에 있는 숙부의 아들, 하나멜의 땅을 유다가 망하는 시점에서 17세겔에 사도록 하여 벌써 부터 17수의 의미를 계시 하고 있었던 것을 여러분도 이미 알고 계십니다
곧 유다는 멸망을 당하고 포로로 끌려 가지만 고향( 새 예루살렘 )에 돌아오게 될 것을 그 17수에 담아 소망으로 주고 계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17수는 마지막 때에 모든 것을 이기고 본향( 새 예루살렘 )으로 돌아가기 위해 변화 받아 영생하는 자들이 꼭 지녀야 하는 숫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노아의 때에 홍수도 노아 600세 2월 17일 부터 비가 내리고 땅의 깊음의 샘들도 터지기 시작을 합니다 홍수 재앙에서 이긴자들이 되는 노아와 그의 식구들이 가진 17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 17일이 당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 조합을 생각해 볼 때에
그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은
주일이 되며 17수를 가진 날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년도가 되는 숫자도 당연히 17의 배수가 된다는 것도 알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암 치료에 들어가셨다가 정확히 1년 후인 2014년 12월 17일 오후 3 시쯤
변화( 소천 )하셨다는 통보를 받게 됩니다
가사내용을 자세히 보시면 이단에서 해방되고 자유케 됨을 기뻐하시며 또한 이를 빗대어 안식의 새날을 기뻐하고 계시는 내용이 되고 있습니다
또 아울러 자신의 변화 날짜도 예고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어떻게 사람이 자신이 어느날에 소천( 변화 )할 것을 알고 그 날을 1년 전에 예고를 해놓고 맞추어 떠날 수가 있겠습니까
이단에서 자유롭게 된 날을 자신의 변화의 날 곧 별세( exodus )의 날로서 지구에서 해방되는 날과 맞추어서 그 날에 대한 계시를 능력으로 맞추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 날이 될 것에 대해 의심치 말라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아니 병원에 누워있는 사람이 어떻게 자기 마음대로 그 날을 정확하게 맞출수가 있겠습니까 사람으로 그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더구나 모르핀을 맞아야 하는 상태의 말기의 암환자가 어떤 의식이 있어서 그럴 수 있겠습니까
초림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몸이 깨지는 변화( 부활 )를 가지셨다면 박목사님은 병상에서 몸이 깨지는 변화를 가지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과정에서 차이만 있었지 변화라는 결론에는 다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책임을 각자의 믿음에 맡기셨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산자로 변화를 할 것인지, 영원한 죽음의 유황불 못으로 들어 갈 것인지 이제는 자신의 선택이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봐야 합니다 말씀으로 봐야 합니다
기억하시나요 박목사님께서 이 종말의 때에는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보고 눈으로 생각하는 때가 된다고 전에 제가 기록을 한 적이 있습니다
눈으로 보는 이 날들을 믿음의 머리로 보면서 매일 매일 같은 날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종말의 지식과 믿음이 있으면 보이는 대로 살지 않고 깨어 예비하고 준비하는 사람이 된다는 뜻인 것입니다
그런 머리를 가지라는 박목사님의 설명이셨습니다
사 29장은 심판을 예고하고 있는 장이 됩니다
사 29:10 )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눈은 선지자요 너희 머리를 덮으셨음이니 머리는 선견자라” 고 한 기록이 되는데요
먼저 머리( 믿음의 지식 ) 부터 깨어나라는 박목사님의 말씀이신 것입니다
알아야 믿게 되고 믿어지면 준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머리가 먼저 봐야 하는 것입니다
노아의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으로 보면 홍수가 보이지 않지만 노아처럼 머리로 봤다면 다 방주안에 들어 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홍해도 눈으로 보면 절망입니다 그러나 머리로 보면 바다 밑에 예비 된 그 길이 보이는 것입니다